콩기름(수선 중)

한국어 현지 연수

튀어라 콩깍지 2007. 3. 28. 14:13
 

(1) 한국어 현지 연수 출발.

 

한국어 수강생들과 현지 언어 연수(?)를 갔다.

나는 그저 객으로만.

 

승선 1시간 전에 모여 인사 나누고 배에 오르면서 이번엔 오가는 길이 심심찮겠다.. 생각했더니만

수강생들의 배려로 방이 다르다. 특등실. 이름하여 특별대우다. 

수강생들이라지만 대부분 연배 높은 분들인데 어린 것들이 특등실로 들고 어른들이 좁고 불편한 2등실이라니... 에고고.

 

가방 넣어놓고 곧바로 저녁식사. 후엔 간담회.

여든 넘으신 할머니 두 분과 정년퇴임하신 할아버지 네 분... 젊다고 하면 50대라니 ㅎㅎ

 

무엇이 일본인들에게 나이 들어도 여전히 씩씩할 수 있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 한국인들에게-특히 한국 여자들에겐 마흔만 넘어도 고넘의 체면에 올무를 매게하는 걸까? 

 

내가 가르치던 그림패에 겨우 쉰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계셨는데 참 얌전한 분이셨다.

말 끝마나 <이 나이에 부끄러워서 어떻게...> <남들이 주책없다 할까봐...> 숨어들기 바쁘신.. 얌전한.. 그러니까 속 터지는... 분이 계셨다.

 

그런데 일본에선 어디든 뭔가 가르치거나 배우러 가보면 거의 내가 막내다.

내 나이가 그 <부끄럽고.> <주책없는> 나이인데 말이다.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여든 너울도 잦으니 써 먹을 데도 없이 9년, 혹은 6년 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은 이 나라에선

쉰 쯤은 <정말 젊은, 부러운> 나이인 게다.

<참말 젊네~~>

내 나이를 물으신 몇 분 할머님들이 으례 덧붙이시던 말이 그렇다. 참말 젊네. 좋을 때네. 뭐든 다 하겠네. ㅎㅎㅎ

그러면 참말로 내가 아직 무슨 일이든 벌리고 시작하기에 전혀 늦지 않은, 너무 젊은, 나이인 것처럼 생각될 지경이다.

 

(2) 교류회

 

부산 카톨릭 센터.

일본어를 배우는 한국인과의 교류회가 예정되어있었다.

이 모임의 대장인 여든 나이의 할머니 - 고조노씨가 후리소데 기모노를 한 벌 준비했다.

입는 방식을 설명하고나서는 갖고 간 모든 것-옷, 머리장식, 띠, 신발, 부채, 버선.... 일습을 모델에게 선물하겠단다.

 

일행이 다른 곳을 돌아보는 동안 기모노를 입혀야하므로 고조노씨와 나를 포함한 네 명이 먼저 회장을 찾아갔다.

어디가 교류회장인지 안내표 하나 없어서 몇 번 오르락 내리락 수위아저씨께 거듭 물었다.

놀러온 아저씨들과 한담 중이던 수위아저씨는 그저 오른쪽 왼쪽 손가락질만 한다.

불을 켜두었다는데 불켜진 방이 없는 게다. 방향만 확인하고 들어가 형광등을 올린다. 먼지가 뽀얗다.

어지러운 책상..

먼저 와 기다린다던 모델 아가씨는 나타나지도 않고...

세 분 할머니와 책상을 밀고 당기면서 회장 정리를 했다. 낑낑끙끙.

그 동안에도 입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모델이 나타나질 않는다며 고조노씨가 애 태우며 발을 동동.

약속보다 거의 30분 뒤에 나타난 아가씨. 정말 쭉쭉빵빵이다. 후와! 눈 부시게 이쁜 처녀!!.

쥐색 쉐타와 초미니 반바지 아래 쥐색 스타킹을 살짝 받쳐주는 주름진 부츠까지 완벽하게 이쁘다.

그런데 인사성은 꽝이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다. 물론 미안한 기색도 전혀 없다. 허.허. 어쨌거나 오긴 왔으니 감지덕지여야하는 건가??... (쩝!)  

다들 조용~. 말 하지 않지만 이 침묵 속에 섞인 의미를 왜 모를까? 이 처녀도 북대기만 커진 철딱서니로구만.

그처녀가 한국인이어서 내가 성가시다.

내 욕심? 허세? 무어라도 좋다, 그저 형식일지라도 한국인들이 헛점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소한 배려와 예의가 나를 단단하게 하는 쐐기가 되는 게다. 이런 만남에서는 더욱 헐거워지지 말았으면...

까딱 한국인 전체의 인상으로 규정되어질까봐 속을 태운다.

급히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올리려는데 이 처녀. 신경질이 앙칼지다.

머리 만지지 말고 그냥 두란다. 길다랗게 풀어내린 생머리를... (폭 넓은 일본 전통옷을 입혀두면 전설의 고향 촬영팀인줄 알게??)

목선이 드러나야 이쁘기 때문에 머리를 올려야한다.는 고조노씨의 표정이 난감해뵌다.

그럼 묶기만 하겠다고 꽁다리를 높이 치들리게 묶는다. 이 아가씨. 가차없이 고무줄을 끌어내려 풀어버린다.

짜증이 도를 넘는다.

벌써 다른 곳을 둘러보러 간 일행이 돌아와 밖을 얼쩡거리는 게 뵌다.

난감. 이런 낭패가...

때 맞춰 진행사항을 체크하러 들어온 학원장님이라는 여자 자태가 참 곱다.

안되겠어요. 모델을 바꿔야겠어요. 이러쿨저러쿵... 시간이 엄청 바쁘거든요. 원장님이 해주세요.

순순히 그러겠단다.

머리 만지랴, 옷 입히랴, 단추 붙은 버선 신기랴, 장내 정리하랴. 아주 그냥. 어휴.

 

자리 배치는 미리 준비한 추첨표를 뽑아서 정하기로 한다.

예의 그 날씬 아가씨. 옆자리에 친한 사람을 앉히겠다면서 추첨표 봉지를 아예 뒤집어 엎는다.

원하는 번호표를 찾아내느라 애써 준비한 추첨표 봉지를 엉망을 만들고 있다. 그냥 바라보자니 한심하고 어이 없다.

완전히 제멋대로로군. 씁쓸.... 생긴 게 너무나 아깝다. (??)

나오기로 했던 사람 중 한 명은 펑크를 냈고... 절반은 지각했다.

 

일본 측에서 미리 연습한 <고향의 봄>을 함께 부르고 한국 측에서도 대표가 나와서 일본 동요를 한 절 불렀다.

기념품 전달 땐 손바질로 만든 멧돼지 모양 브로치가 한국 측에 전달된다.

건강도 좋지않은 할머니 한 분이 낱낱이 손으로 만든 브로치다.

한국은 올해가 돼지띠지만 일본에선 멧돼지띠다. 

짝이 된 일본인에게 그림책을 선물한 한국 여자가 있는 모양이다. 조그마한 마음 씀이 따뜻하고 좋다.

그 넘의 말썽 많은 체면(??)까지도 살려준다. 아마도 이건 내 허세일 게다.

이거 봐. 한국 사람들도 이렇게 마음 쓸 줄 알아..하는...허세... 슬프다. 

이럭저럭 무사히 도시락까지 나눠먹고 교류회를 끝낸다. 

다행히(??) 식사 후엔 멀뚱거리고 바라만 보는 얌체들 없이 함께 분리수거를 꼼꼼히 한다.

그동안의 연락과 준비를 맡은 오선생님과 모델이 되어준 학원장님은 나름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것 같다.

그래도 다들 아, 참 좋은 시간이었다며 덕담 늘어놓고 헤어진다. 

 

(3) 여행

 

오후엔 경주 석굴암과 불국사부터.

가이드가 정말 맘에 든다.

밝으면서 가볍지 않고, 과하지 않으면서 손 빠지지도 않은 안내 설명이 참 맘에 든다.

오직 손님이라는 것에만 신경 쓰다가 농담 삼아 한국인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까지 무심코 내뱉는 가이드도 더러 있는데

이번 가이드는 적절한 선에서 딱 끊으면서 자존심을 탱탱하게 지키고 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해둔다. 다음에 또 부탁해야지. ㅎㅎ  

 

일정 동안 주로 경주를 돌았다.

박물관, 봉덕사종, 천마총, 반월성, 계림, 첨성대, 안압지...

누구나를 막론하고 수첩 들고다니면서 받아적고, 묻고, 서로 알려주는 진지한 모습들... 아름답다.

나도 저렇게 나이들기를... 행여 남의 눈에 주책스러워뵐까 무서워서 집 밖도 나서지 못하는 꼴은 아니기를...스스로 의연하기를 바램한다.

 

(4) 식당에서

 

왕년에 여배우라도 했나? 싶게 에쁜 주인아줌마가 접대를 한다.

선뜻선뜻 농담도 던지고 화들짝 웃으면서 반기고 드는 품새가 아주 노련하다.

...까진 좋았는데 식사 도중 자기네 집 만의 특별 비법 반찬이라면서 선전을 한다.

고작 소금 뿌리고 기름 둘러 볶은 <김가루 볶음>이고만. 밥도 못먹게... 신경이 팍팍 쓰인다.

얘기 나누던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면서 거듭 거듭 김가루 볶음을 사라고 졸라댄다.

그 다음엔 음료수 값을 걷으러 다닌다.

식사 비용은 단체로 해결하지만 음료수는 각자 시켜마신 사람 부담이기 때문이다.

아직 식사 도중인데 심하다.

어찌나 큰 소리로 어찌나 식당 선전에 열을 올리는지 옆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가 없다.

 

옆지기가 가만히 가이드에게 아줌마 좀 말려달라 부탁한다.

겨우 조용히 숟가락을 놀린다. 내 참.

기분이 팍 구겨진다. 하나는 생각해도 나머지 열은 놓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무지.

무지란 더러 죄다.

그럴 때의 <몰라서...>란 변명일 수 없다. 남에 대한 배려를 몰라서는 안되는 게다.

지혜란 대체 뭔가? 제때 제때 경우를 밝히는 일일 게다. 

 

(5) 선물가게

 

식당 뒤쪽으로 선물 가게가 붙어있다

잠깐만 시간을 얻어서 가게를 둘러본다는 사람들 틈에 섞여 나도 같이 들어간다.

유리 문에 신세계인지 롯데인지 좌우간 면세점이라고 씌여있는 걸 보면서 들어간다.

면세점?? 이 값이??

인사동과 흡사한 물건들인데 친절하게도(??) 모든 값이 일본 엔화로만 표기되어있다.

어림없이 비싼 값으로... 무단히 내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얄팍한 장삿 속이 난감하다.

이 사람들... 한국 팬들이다.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일교류회원에 가입하여 재일한국인의 처우 개선이라거나

일본 속 한국인들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지원하는 역할을 자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한국 드나들기를 열 다섯 번 째라는 사람부터 못해도 서너번 씩은 다녀간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관광지 상품들이 특색 없이 똑같다. 중국산 장난감조차 한국 유적지 기념품이라면서 가게마다 넘쳐난다.   

한 두 곳 돌아보면 값 파악이 대개는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가게엔 내가 얼른 보기에도 터무니 없는 값을 매긴 상품들이 쌨다.

배우처럼 이쁜 주인 아줌마가 잽싸게 따라와서 목소리를 높여서 호객을 하는데 자꾸 내 뒷통수가 따끔거리고 씁쓸하다. 

한 두 푼 더 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쥔네가 딱하다. 

아무도 어떤 것도 사지 않고 슬슬 나온다. 가게 안이 온통 썰렁하다. 

 

(6) 고향집

 

옆지기와 나는 다음 일정에서 빠져나와 시댁에 들렀다.

옆지기는 부임한 후 휴가조차 없었으니 귀국은 꿈도 못꿨고, 그래서 몇 년을 부모님도 못뵙고 넘긴 게다.

지팡이 없으면 걸음도 못걷는 시어머님이 새벽 시장에 나가 꼬막, 쭈꾸미, 생선... 줄렁줄렁 사들고 들어오신다.

마냥 행복해 하신다.

 

울 아들은... 혼자 두고 왔는데... ㅎㅎㅎ

 

그런데

친구들이 내려온단다. 기왕 나왔으니 개업한 다른 친구네도 들러보고.... 그러자면서 욕심 부린다.

이번엔 안된다니까 그래.

시댁에 이틀 있을 거라면서?? 그 중 하루는 우리한테 줘. 막무가내다.

너 같으면 밤 10시에 들어와서 다음날 아침 먹고 친구들 만난다고 쪼르르 나가는 며느리 이쁘겠냐?

어? 엊저녁에 늦게 왔어?

그랬지. 거기서 여기가 어딘데..

그건 그렇겠다. 할 수 없구나뭐 다음에 보자.

 

정작 우리집엔 들르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옆방 사는 **씨가 "얼랄라? 선생님. 그냥 가셨어요?? 청소 다 해두었는데요" 전화 너머에서 목소리 높인다.

 

예정대로 살아지는 건 아닌 게다. 언제나.

 

(7)

 

배에서 내리면서 옆지기는 근무하러 가고(?)

나는 가방 풀고 꽃씨 사러 가야겠다.

 

후배가 터 닦았다는 집터를 지나다 내려보았더니

바다와 들, 산 강까지 전망 안에 총 망라한 언덕 위의 집터에 바닥만 만들다 둔 집 주변으로  

미리 가꾸는 꽃밭들이 올망졸망 어찌나 이쁘던지...

빈 곳을 채워줄 꽃씨는 내가 보내야지. 싶었다.

그렇게 이쁜 집 하나 욕심난다면서 나는 땅도 없는데 무단히 후배네 집터 보고 기분 좋다고 방방 뜨는

콩깍지. 못말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