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씨(일상)

내 이 환장할 건망증.

튀어라 콩깍지 2007. 5. 3. 23:44
 

액자를 찾아온다.

아시아 미술전에 출품하려고 일찍부터 벼르던 거다.

출품 요강이 어찌나 세세콜콜 세밀하게 규정되어있던지 덜렁이다가 까딱 한가지라도 틀어질까 긴장한다.

일테면 액자의 재질, 넓이, 최대 높이, 심지어 마트를 끼울 것인지 말 것인지, 유리판은 절대 불가하고... 등등등

정작 그림보다 주변의 것들이 더 피곤할 지경.

 

하여간 알루미 아니면 나무 가틀로만 하란다. 유리 없이.

알루미는 아무리 교묘하게 나무인 척 위장을 해도 그 질감이 너무 싫어서 애초부터 제외했고

광택 들어간 흰 나무 가틀로 맞춰왔다.

보라색 배경와 흰색조의 색깔이 그다지 많지 않은 그림이므로 깔끔해 뵈는 쪽을 선택한 것.

 

룰루랄라...

그림을 끼워보고 손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까진 무진장 오졌다.

완성이란 늘 벅차므로.

...

근데.. 원서를 어따 뒀더라??에 생각이 미치면서 늘상 놓아두는 곳을 더듬으니 없다.

으갸?? 어따 뒀지?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 여전히 뵈지 않는다.

여기서 엎드려서 원서를 썼고, 들고 나가면 잃어버릴까봐 메모만 따가지고 나갔고, 사각봉투에 넣은 것 같은데...

큰일났다. 또 너무 잘 챙겨버렸구만.

 

중요한 것을 너무 잘 챙기다가 잃어버릴 때가 허다한 내 버릇을 잠시 잊었다.

그냥 굴리면 아무데서나 눈에 띌 것을 꽁꽁 잘 챙긴다다가 종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에구.

틀림없이 또 그랬다. 틀림없어. 우짠다냐?? 에구 에구...

 

밤중까지 찾았다.

여행 가방까지 낱낱이 다 들춰보면서..

울랄라, 준비는 다 끝냈는데 원서가 없다니.. 말짱 도루묵 아닌감??

그 원서. 친절한 화방아가씨가 딱 한 장 뿐이라면서 벽에 게시되었던 걸 떼어서 주었던 건데 이런 낭패가...

 

저녁참부터 찾기 시작한 게 12시를 넘기고 1시를 넘기고...

... 휘유! 휘유! 어쩐담? 어쩐담??

...휘유!!!!!!

퍼뜩!

분리해서 버리려고 묶어둔 종이 뭉치를 다시 뒤적인다.

아이고메!! 여기 있네. 내가 못살아... 털퍼덕! 

 

얌전하게 포장해서 쓰레기장에 내다버렸던 최대의 사건은 봉급이다. 오래 전에...

한꺼번에 건네 준 봉급을 종이로 잘 포장해서 통장에 넣어야겠다면서 잠시 식탁에 올려뒀는데

갑작스레 손님을 맞았지 뭔가.

차 대접하고 알콩달콩 얘기 나누다 돌아갔다.

저녁참.

지갑 안에 달랑거리는 잔돈을 보면서 조금 꺼내놓고 넣어야지... 봉급 봉투를 찾으니 없는 게다.

어라? 그럴 리 없는데??

이쪽 저쪽.... 없다.

 

그때 살던 아파트는 오후 5시면 정확히 쓰레기 처리를 한다.

5시가 뽀짝 다된 시간.

혹시??

심장이 쿵쿵거렸다. 까딱하면 온 식구가 한달동안을 죄다 손가락만 물고 배겨야할 판이라..

딸아. 네가 좀 가봐라. 엄마 놀래서 못가겠다. 덜덜!

종종종 내려간 딸애가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열고 종이 뭉탱이를 뒤적여 찾아온다.

다시 묶어놓기도 전에 쓰레기 차가 왔더란다. 에구구!!!

손님 들이닥치니 식탁 위를 아주 깨끗이 싹 쓸어서 정리를 해버렸음에 다름 아니다. 오메오메!!!

 

내가 서랍을 칸칸이 나누어 세밀하게 분류해 넣는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일 게다.

눈 감고도 찾아내려면 항상 두는 곳에 놓아두는 수밖에 없지않나.

 

그래도 아직 동사무소 같은 데서 남편 이름을 잊어먹고 버벅거리다가 직원들에게서 의심쩍은 눈총을 받은 적은 없다고 벅벅 우김질을 해야할까?

 

토끼 용궁 다녀온 기분. 휘유우~!

덕분에 방 정리는 야물게 잘했고만. ㅎㅎ

 

보랏빛 등꽃을 배경에 그려넣어야 겠다.

살랑거리는 등꽃 향기가 넘나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