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할배
잠시 내려 일 보는 새에 지나가던 트럭이 뜬금없이 내 차를 부욱 뭉개고 뺑소니를 쳤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운전대 돌리면서 출발하려다 무심코 부재중 통화 두 통 찍힌 핸드폰에 눈을 준다
--'?? 모르는 번호잖아??..'
어리둥절 발신을 누르는데
길 건너 아저씨 어쩐지 나를 향해 맹렬히 전화를 거는 듯.
생판 낯 모르는 아저씨...
유리창을 내리니 역시나 나를 빤히 쳐다보며 휴대폰을 거두는 품새부터 틀림 없으렷다.
"?????"
"내려서 차 꼴 좀 보세요"
"?????"
말대로 내려서 내 차 꼴을 보니...
!!!!!!!!!!!!!
호호호호호... 글쎄 웃음이 나더라.
호.호.호.호.호...호호
손바닥 너비로 앞꼭지부터 뒷꼭지까지 부욱 끍혀있는 자국도 모자라
바퀴 덮개는 쪼개져서 저만치에 뒹귈더라니까
흰색 포터가 그 모냥을 맹글어놓고 줄행랑을 놓더래.
"그냥... 가요?" 헛 참.
그런데 어쩐담. 바로 딱 옆에서 본 사람이 있으니... 호.호.호...
꽁무니 뺀 트럭운전수나 상흔을 보며 클클거리는 나나 둘 다 정신병자로 보였을텐데...
아랑곳 없이 호호호 웃었지뭐야.
나도 몰라. 왜 꼭 그럴 때 웃음이 새는지.
울면 뭐해. 이미 있어버린 일이란 당최 물릴 수도 없는 일이라는 뜻인데뭐...
친절하게도 발을 동동 구르며 갈 길 멈춰서서 나를 찾고있는 낯 모르는 아저씨.
총기도 있으시지. 잽싸게 달아나는 차 번호까지 따두셨다니...
여차저차... 경찰서를 몇 번 오가면서 경위서인지 뭔지도 쓰고
너덜겅거리는 차 꼬라지도 열심히 사진 찍고...
진즉에 얼굴 익은 담당경사님과 마주보면서 허허거리고...
조서에 도장을 꽝 찍으려는데 이웃동네 할배처럼 그냥 그런 할아버지가 들어오셔.
짜잔!!!
틀림없이 낮 술 한 잔 짜안~!하게 걸치고서 우당탕 들이받자 줄행랑을 놓으신 게 분명한.. 트럭운전수.
본인께서는 절대로 술 같은 건 못마신다고... 안마신다고 설레발이신데...
그 모습 바라보며 화는 커녕 자꾸 헤죽헤죽 웃음 나는 내가 문제인가??.
가만히 바라보고 서있는데 담당경사님이 날 소개 시켜. 피해자라고... 피해자...
에쿠!
내가 마치 잘못하다 걸린 아이처럼 화들짝 허리 굽혀서 얼른 인사를 했지. 꾸뻑!!!
내 웃는 낯색에 번쩍 기운이 나신 할아버지.
오래 묵은 벗처럼 반색을 하시며 폭포수처럼 말을 거시더라구. ㅎㅎㅎ
속으로는 '아니, 어쩌다 그러셨어요? 위로라도 건네고 싶지만
헤실거리며 그냥 입을 꽈악 다물고 가만 있었지.
'적잖은 견적에 벌금까지 내시겠구만. 우짜꼬?
할머님께 쥐뜯기는 거 아녀??'
은근짜 걱정까지 함시로...
들이받치는 게 어디 차 뿐이야?
내 인생의 옆굴탱이
난데없이 치받칠 때가 좀 많든?
삶에서 뺑소니를 놓고서도 잘만 사는 위인들 얼마든지 있는데.. 까짓 거 대수야?
짜부라져도 잘 살아보세다. 실실거리면서...
공업사에 냉큼 끌어다주고 왔지.
또 왔어요(???)
공업사 쥔장이 무지 반긴다.(??--원래 아는 사이거든)
오랜만이네요. 잘계셨어요? 애들은요? 가족들 모두 잘 지내시죠?
오다가다 마주치지 않으면 안부 묻기도 힘든 공업사 주인네...
뺑소니 할배 덕분에 두루두루 인사를 챙긴다.
누군가에겐 이처럼 쉬운 인사 하나 나누기 위해서도
누군가가 내 옆굴탱이를 디립다 걷어차서 상채기 내줘야 하는 게야.
감사할 일.
바쁘다는 후배를 '오늘은 집에서 푹 좀 쉬어' 구들장에 묶어두고
후배 차 빌려 타고 내 일 보러 가는 참.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