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라 콩깍지 2005. 10. 12. 22:15

(1)

 

아들놈이

피자를 시켰다. 오랫만에

남의집 애들 다 먹는 피자 시킨 게 무슨 사건이라고...

 

아니다. 사건이다.

멘타이코를 시켰으니까

그러니까 명태알 피자.

우리집 애놈. 생선알을, 무슨 죽으면 꼬부라지는 쥐약이라도 되는 줄 알고

절대, 절대로 안먹는다

그런데 이녀석. 덜컥. 멘타이 마요네즈 피자를 먹겠단다.

척척 전화를 해서 발음도 정확하게

"멘타이 마요네즈 피자. 에므(M) 사이즈데 히토츠 오네가이시마스"했다

얼라리?

짜아식!

그래 명태알 맛있는 거 이제 알았나보네.

생선알이란 게 원래 영양 덩어리란다야. 흐뭇하다 

'누구한테 좋다는 말을 들었나? 웬 개과천선?' 의아해하면서도.

 

이탈리안 크러스트 생지로 구운 피자는 냄새부터 죽여준다.

매운 고춧물-다바스코-도 새로 사서 척척 핑겨대고

(어째 나는 고춧물만 보면 담배를 떠올릴까? 발음 때문? 다바코가 담배니까...)

한 입 척 베어문다

 

(2)

 

차암 이상하게도

어려서 토옹 피자나 햄버거 따위 안먹였는데도

어느날, 진짜 뜬금없이 피자를 먹겠다들더니

햄버거고 피자고 퍽퍽 먹어댔다.

안가르쳐도 저절로 태평양 건너 코쟁이들 입맛으로 자동 조정된 것처럼 잘도 먹어댔다

 

우리집 애놈 어찌나 어찌나 입이 짧은지

새로운 걸 하나 먹이려면 공갈, 협박, 회유, 아부... 있는대로 재롱을 다 떨어대야

겨우 찡그린 얼굴로 혀끝을 0.5초동안 내밀고

살짝 맛을 훑은 다음에 거의 에누리없이 고개를 흔드는 게 정석인지라

나는 그 신속한 적응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뭐든 안 먹이면 죽을 정도로 통 안먹고 버티던 놈이라

패스트 푸드면 어떻고, 방부제가 좀 들어있으면 어떻냐. 좌우간 먹고 버팅겨라! 는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먹겠다하면 그저 감지덕지.

 

나는 우리 아버지 닮아서

맑은 물에서만 사는 민물고둥 잡아다 된장물 풀어서 팍팍 끓인 다음

탱자 울타리에서 여문 탱자 가시 끊어다가

토방 언저리에 털퍼덕 앉아서

아버지랑 둘이 고둥살 뽑아먹는 따위.

딱 그 입맛인데...

또는 

헌간에서 마늘을 둥치 채 뽑아와서

잿불에 구우면 달큼 매큼. 환상적인 맛, 완전 자양강장제.

것도 시들하면

닭장에서 달걀 주워다 톡톡 구멍을 뚫고 난로불에 소금 깔고 세워 익힌, 구운 달걀.  

또는 한쪽에 구멍 뚫고 알만 조로록 빼낸 다음, 씻은 쌀 반만 채워서 잿불에 올려 구운 밥.

그도 아니면 양푼이 채 삶은 고구마, 찰 옥수수, 살얼음 뜬 싱건지랑 호로록! 같이 삼키면

아이고! 진시황이 다 뭐라냐. 천국이 따로 없구만은...

겨울날 굴 파서 꺼내온 무를 숟가락으로 득득 긁어 파먹는 건 또 어떻고?

 

나는 그렇게 딱 흙냄새 풀풀 풍기는 입맛인데

우리 애들은 목구멍에 도키다시 공구리를 쳐버렸는지 어쨌는지

요상한 것들만 찾아대니 그것 참. 

 

그런데 모처럼 이 녀석이 입맛을 좀 바꿔볼 양 호기를 부리니

잘먹는 집 아들 둔 여늬집 엄마들과는 또 다른 감회로 감격하는 게다. 겨우 그 정도로..

 

(3)

 

드디어 아들놈은

다바스코 골고루 묻은,

치즈가 쭈우욱 늘어나는 피자 한조각을 떼낸다

그러더니만

물끄러미 명태알들을 바라본다

물끄러미.

하안참 동안.

표정이 좀 씰룩거리는 것도 같다

나도 살짝 긴장한다

...

"엄마"

"응?"

"근데 멘타이가 뭐야?"

'무시기?'

맙소사. 우리 아들놈 멘타이가 뭔지도 모른다. 어어쩌언지이~~!

"그거... 거기 보이는 거 그거..."

명태!하고 속 시원히 가르쳐주면 될 걸. 나도 그냥 어물쩡거린다

 

불안하다

나는 피자같은 거 좋아하지도 않는데 까딱 내가 다 먹어야하는 사태가???

아이구우~! 

무슨 벌레 먹는 표정으로 하는 수 없이 애녀석이 한쪽 먹는다

나도 하는 수 없이, 꺼뻑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 쪽 집어들고 먹는다.

"맛있지? 맛있지? 엄마는 멘타이코 맛있더라. 이거 엄마가 좋아해. 어려서부터 잘먹었어"

쓰잘데기 없는 수다를 떨어대며 또 한쪽, 두쪽 먹는다.

(에구구! 먹기 싫어.)

아들놈도 두쪽 먹는다.

표정이 여영 아니올시다지만 지가 주문한 책임을 지려고 나름대로 끙끙거린다.

그리고는 남은 절반은 뚜껑 얌전히 덮어서 식탁 위에 밀친다.

 

끄으응! @#$!...

속으로만 투덜거린다.

에라 이!

속으로만 종주먹을 댄다. 

 

콜라까지 벌컥거리고 나란히 사이좋은 간식을 끝낸다

둘 다 밥 먹기는 틀렸다. 젠장.

쫌만 잘 먹어주면 좀 좋냐 짜식아. 끄덕끄덕 지 방으로 가는 아들놈 뒷통수에 대고 

여전히 속으로만 군시렁군시렁... 군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