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면서 염소와 이별하는 여덟살 아이들
(1)
초등생 아이들이 수업의 하나로
목장에서 염소 부부를 빌려왔다(?)
2학년 1년동안 돌보고 돌려주기로 한 것.
처음엔 무서워하며 가까이 가지 못하던 애들도
새끼 염소가 태어나니 환호했다
엄마 염소 이름은 메~!
갈색 털 아기염소에게는 코코아라 이름 붙이고
흰털 아기 염소는 밀크라 부르며
점심 시간 후면 줄지어 마트에 가서
상품 포장시 뜯어낸 채소 줄기들을 얻어오고
산보시키면서 다투어 정을 주고 돌본 1년
아빠염소가 폐렴으로 죽었고
돌보던 아이들은 맞닥뜨린 죽음을 슬퍼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남은 염소가족을 병들지 않도록 더욱 잘 돌볼 것을 서로 다짐하고 아파한다
지저분하다면 지저분하달 수도 있는 염소 우리
그 안에서 염소와 함께 얼크러진 아이들의 모습.
염소가족이 목장으로 돌아가는 날
트럭 뒤를 엉엉 울면서 뒤쫒아가는 아이들.
그래도 여덟살 아이들은 말 한다
여기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하지 않겠냐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보내야 한다
메와 밀크와 코코아가 행복하기를 바라므로 헤어지기 싫지만 참겠다.
(2)
어려서 우리집도 가축 천국이었다
그럴밖에... 아버지 직업이니...ㅋㅋ
우선 떼까우.
즉 거위.
여간해서 친해지지 않는 녀석들.
즈이들 눈에 콩알만 해뵜는지 오래비랑 나를 아주 영 우습게 보더니만
급기야 어느 여름 날
우물 가에서 시원하게 등물을 치고 끄떡끄덕 방으로 들어오는 오래비를 우루루 쫒아가
등에서 살점을 한 점 콕 떼어먹고 입맛을 짭짭거린 죄로
아이고, 오메! 내새끼! 저것이 뭔일이라냐???
질겁, 노발대발, 외할머니께 걸려서 즉결 처분된 녀석들.
쥔네 구분을 못하는 닭 돼지 소...
말고도 방을 가득 채운 각종 새- 문조, 십자매, 잉꼬, 카나리아...
떼까우 만큼이나 대책없는 칠면조..
졸랑졸랑 따라다니던 개, 고양이...
아주 바글거렸다. 그 넓은 마당 가득.
닭장에 닭이 한 삼천마리... 돼지 우리에 돼지가 삼십마리
축사에 소가 오십마리
오리 우리엔 오리 사백마리...
나는 고양이도 통 품고 살았지만 그보다는 개를 이뻐했다
이뻐했다는 정도로는 표현이 당당 부족하다
아주 꺼뻑 엎푸러져서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아냈다
고기 먹다가 개녀석이 고개만 갸웃하면 어른 들 눈 피해서 대뜸 꺼내 먹일만큼...
세파트는 세파트대로 똥개는 똥개대로 스피츠는 스피츠대로..
독일산 도오벨만 녀석, 얼마나 방자하게 팔자 걸음을 걸었는지...
정말 좋아한 녀석은
눈이 한가위 달 같다고 이름 붙인 '가우'
그런데 '가우'란 우리말은 실은, <임시 머무는 거처, 즉 가거와 같다>라고 국어사전에 실려있다
그땐 그걸 몰랐으니 오래오래 내 옆에 머무를 줄 알고 붙인 이름이었을텐데...
아주 영리한 똥개.
날 닮아서(?) 고구마를 너무나너무나 좋아한 게 치명적이었는지..
옆집, 성질 고약한 아저씨가 고구마에 쥐약을 놓아서 대문 옆에 뿌렸다가
쥐 대신 우리 가우를 잡았다.
지금 생각해도 고의적이었다
가우 북대기가 커서 우리집 앞을 지나다닐 때 자기네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불만..
가우는 절대로 사람을 물거나 하지 않은 순둥이였는데...
겁은 좀 줬지(?).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에겐...
웡, 웡, 짖어대서 감히 누구든 할머니 앞에서 인상 쓰지 못하게...
학교 다녀와서 가우야! 부르며 뛰어들어왔다가 마당 구석 거적대기...
대성통곡을 한 일주일 했던 것 같다
그집 아저씨, 대문 밖으로 안나왔다. 내 울음소리가 담을 넘는 동안엔...
그집 애들 내가 참 이뻐했는데 그 후론 꼴도 안봤지 아마.
그 다음 한 십년 같이 산, 족보 있는 세파트 두 마리...
(옆집 아저씨 돌고싶었을 지 모른다.)
이름은 여전히 '가우'
이놈들은 북대기가 어지간한 송아지만큼씩 했고
말 귀 영리하기가 고개를 설설 흔들 정도
늙은 괭이와도 서로 기대어 낮잠 자던 모습들.
때로 능청스럽고 의젓하고 날래고 시침도 뚝 잘 떼던...
공원 오르락거리던 사람들, 누구든지 우리집 담 밑에선 숨 죽였다. 조심조심.
한 번도 사람을 물었던 적은 없다. 풀어둬도.
그저 사람들이 그 등치에 놀래서, 송아지만한 세파트가 두마리라고 소문이 나서,
알아서들 설설 기었다...고 시방 말해도 될까?? -ㅎㅎㅎ
세파트 가우는 두마리 다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 새에 옆집 아저씨 이사갔다
(3)
시험 문제 하나 더 맞고 안정된 직업을 얻어서
자자손손 잘먹고 잘살아야 성공했다 여겨지는
우리네 한국 아이들의 곁눈 질 않는,-- 못하는, 투쟁의 유년기, 소년기.
가슴 아프다 하면서 더 가슴 아프게 몰고가는 우리 사회의 구조.
달려가고 난 다음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교과서 달달 외워도, 면접을 달달달 잘 봐도, 주장하는 글을 미끌미끌 잘써도
배울 수 없는 마음의 영역
헤어지는 염소를 아쉬워하면서도 보내야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는 아이들.
생명을 돌보는 책임을 몸으로 깨닫는 아이들.
사랑하는 법을 가슴으로 배우는 아이들.
쉬엄쉬엄 쉬아가면서
그런 걸 채득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