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키다리 아저씨와 일곱 친구들.

튀어라 콩깍지 2005. 11. 16. 11:57

 

 

 

한 해에 두 번

친구들을 만난다. 여름과 겨울.

행여 붙어살면 뭐가 어떻게 되나. 아주 낱낱이 흩뿌려진 전국 단위

그나마 나는 일본으로 들락날락

또 다른 친구는 미국행.

하다보니 전국 단위가 지구 단위로 확장될 조짐조차..

 

대학 때

눈총 받을만큼 붙어다니던 애들

만나서 학교 오고, 주욱 몰려다니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도 함께.

그러니 남학생들 빈축도 많이 샀다

누군가 한 명 맘에 들어서 얘기 좀 나눠볼까, 아무리 쫑궈도

도무지 혼자 있질 않으니 통 기회가 없다는...

화장기 하나없이 로션도 잘 안바르는, 사철 청바지 털털쟁이들이지만

나 빼고 내 친구들은 어디서든 은근히 시선을 잡는,

곱상하거나, 또랑하거나, 단정하고 서늘한 성격과 인상들.

충분히 고개 돌려 다시 볼만 한.. 나 빼고.. (이렇게 너무 솔직해도 탈이여 탈..)

 

걔 중에 용감한 녀석이 하나 있어

불쑥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는 날엔

어김없이 같이 나갔다. 일곱 명이서 우루루~~!

그 날

그 남학생

일곱을 사수하려면 땀 삐질!

 

어느 넉살 좋은 공대 아저씨가

일곱 아니라 일흔 명이라도 자신 있다며 큰소리 뻥!! 친 날

그으래에??? 홍, 홍...

바글거리고 나갔더니만

먼저 푸짐한 튀김으로 입을 번질거리게 해놓고

그 담엔 영화를 보여준댄다

학생 주머니에 여덟명 분 영화표라니...

속으로 겁나게 미안해져서 친구들 표정이 다들 노랗다.

실인즉슨 무지하게 순진하고 착한 애들.

 

짜잔!

데려간 곳은

미 문화원

공짜 영화 상영관.

마당 자갈을 밟고 서서 왁자그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쫒겨났다.

엄숙한 곳에서 떠들었다고... 쫒아나온 직원에게...  

 

그 담부턴 여덟 명이 곧잘 몰려다녔다

키다리 공대 아저씨 옆에 종종종 껌 붙은 일곱 난쟁이들처럼.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외아들이었는데

집 골목안, 창문 밑에 몰려가서

"**야아~! 노올자아~~!"

일부러 짖궂게 일곱 명이 복창을 하면

이 능구렁이 키다리 아저씨

드르륵 창문 열고

"울 엄마가 느그들하고 놀지 말랬어" 그런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집 저집 웃음소리가 담 밖으로 터져나온다.

 

참 막무가내로 풋풋한 시절.

워낙 붙어다니니, 친구들 모임이 어머니들 모임으로 커지고,

급기야 가족 모임이 되고...

집안이 서로 좋은 느낌으로 오가며 지내던 때

얘는 그 중 누구네집 며느리감으로 찍히고,

쟤는 또 누구네집 부모님이 탐내시고...

결국 한 명도 묶어지지 않고 폭풍에 흩어진 민들레 홀씨들처럼

각지에 흩어졌지만..

그 때 기억들 아직 생생한데

부모님들 절반 넘어 이승을 떠나시고,

친구들. 일년에 얼굴 한 두 번 보기도 힘들다.

 

모임 한 번 빠지면 일년이 훌쩍 새나가므로.

"죽을 때 까지 우리가 얼굴 몇 번이나 더 볼 것 같애?"

어느날 한 친구가 물었다.

오모메!! 일년에 두 번 꼬박 챙겨 보아도... 아이고. 이런! 그렇구나!!!

 

애 녀석들이 그 때 우리 나이를 훌쩍 넘긴지 오래.

키다리 공대 아저씨는 어디서 뭘 하는지...

"**야아~~! 노올자아~~!"

창문 밑에서 뽀짝 소릴 질러대고 싶은데..

동네 사람들 '외아들 홀어머니네 담장 밖에 웬 송아지만한 처자들?? 

귀를 쫑긋 세우면  

"울 엄마가 느그랑 놀지 말랬어" 따라나오는 대답에

푸하하. 한꺼번에 폭소를 터트리던

그 목소리들,

따뜻한 담장 아래서 한 번 더 듣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