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라 콩깍지 2005. 12. 25. 00:02

중고등학교 때 듣지 못하면

미술사라는 게

언제 배울 기회가 있겠냐? 싶어서

욕심껏 애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기름칠한 베어링처럼 혓바닥을 돌려댈 때 있었지.

 

출석부를 내려놓기 바쁘게

"로마..하면 뭐 생각나?"

지난 시간에 얘기한 콜롯세움을 떠올리며 물었더니

"오드리 햅번요"

누군가의 천연덕스러운 대답

"???...!!!"

우하하하!!!

그 때 얼마나 통쾌했던가?

그애의 대답!

바로 전 시간에 배 고픈 사자 밥이 되는 기독교인의 비극과 아울러

목 아프게 들려준 석조건축물이니 원형경기장이니... 그런 건 아랑곳 않고

깜찍하게 로마의 휴일 - 오드리 햅번이라니...

 

그 땐 그러니까

영화 보는 애들이 있었다는 말이렷다.

 

지금

물색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데

남편과 아들이 나란히 앉아서

테레비에서 보고있는 영화가 <로마의 휴일>

숏커트로 아이스크림을 낼름거리면서 일탈을 즐기는 햅번과

그런 햅번의 신분을 모르는 척,

정작 기자 신분을 속이고 능청스럽게 로마 유적지를 도는 그레고리팩

선상 댄스파티.

찾아나선 경호원을 햅번이 키타로 내리치는 장면에서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영화인 듯 깔깔거리는 쉰 줄의 아빠와

스무살의 아들

 

"저 영화 언제 찍은 거래요?"

문득 물어오는 아들

"엄마가 너만 했을 때, 이미 열 번 쯤은 봤을 게다. 아마"

"무지하게 오래됐네"

"무지하게??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되냐?"

 

그러고보니 그 때

그애가 로마 미술의 특징을 말하는 대신

오드리 햅번을 들먹이던 때

아들놈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군 그래.

대차나

무지하게 오래된 얘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