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사진)

이토 히로부미 생가와 별장

튀어라 콩깍지 2006. 1. 4. 01:30

하기(萩)에 들른 길에

부근 유적지를 몇 곳 돌자하여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근거지가 되었다는 마쓰시타 무라 주쿠와 송음신사(소인진자)에 이어

걸어서 2, 3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등박문(이토오 히로부미) 생가와 별장에 갔다

내심

아들놈에게 한국 역사 안에서 관계 깊은 사람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으로..

 

수리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한 생가 옆에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는 별장도 나란히 있다

 

안쪽 방 둥근탁자 위에 놓인 이토 히로부미의 앨범

뒷 부분에

조선 총독부 총감 시절 사진이 많다

 

몇 장 앨범을 찍었더니

빛 반사도 반사려니와 흔들려서 형태 알아볼 수 없는 게 태반이다.

겨우 알아볼만한 것들 몇 장 올린다.

 

 

<조선 황태자와 함께>라는 해설

그러니까 가운데 앉은 분이 순종이신가 보다

식민지 시절의 황태자라...

착잡한 기분...

 

 

메이지 42년(1909년) 1월

<한국 황제의 남쪽 순례시 부산에서>

 

한국 황제의 제 나라 순례 길에 수행인이 일본인이라니..

고종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꼬?

 

 

 

이토 히로부미 생가다.

공사 중이라 출입금지

열린 대문에서 마당 쪽으로 한 컷

 

 

생가 바로 옆에

옮겨 지었다는 별장.

ㄷ자 형으로 지어진 일본 전통 다다미 구조.

 

호되게 추운 날이었다

 

돌아나오는 골목에서

아들에게

일본에 살면서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건

어떤 면에서건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실력을 보여주라는 말과도 같다는 것에 대해 일장 연설.

적으로 보지 말고 친구로 보되 우선 내가 똑바로 서라는... 요구.

의무이기도 한..

 

아들!

등짝 펴라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허세가 아닌

절로 고개 수그러들만큼의 꽉찬 사람됨으로.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넘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