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마쓰시타 무라 주쿠
일본 근대화의 산실이되었다는 松下村塾(마쓰시타무라주쿠)는
요시다 소인(吉田松陰)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80여명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40여인이
일본 근대화(유신)의 주역이 되었고
총리만도 일곱 명을 배출한 곳이다.
요시다 소인에게서 교육 받은 기간은 불과 1년.
게다가 요시다 소인이 정쟁에 말려들어 처형당한 나이가 고작 스물아홉이었다니
그 짧은 기간동안 제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도 안될 지경.
내 옆에서 어떤 가이드 왈 :
"요즘 고등학교가 3년이죠?
대학은 4년이죠?
졸업하고 나온 사람이 어떻지요?
절반 이상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건 아니죠?
그런데 여기선
1년 가르쳐서 원대한 포부와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을 길렀다는 얘깁니다"
<마쓰시타 마을 학원의 교육 방침>
이 학원에는
"스승으로부터 3척 떨어져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 등의 유교적 풍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제동행으로 함께 배우는 것이 기본방침이었다
松陰은 그 생각을 安政 5년에 <모든 제자에게 고함>에 썼다.
"무라주쿠가 예의 범절을 간략화시켜 규칙이 까다롭지 않은 것은
그런 형식적인 것보다는 참되고 성실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어서다.
새로운 학원이 만들어진 이래, 학생 모두는 이 방침에 따라 서로 교제하고
약한 사람이 있거든 서로 돕고, 힘이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가 힘을 합했다.
학원을 증 개축할 때, 기술자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완성시켰던 것이
그런 면의 발현이다"
<결혼하는 여동생 文을 위하여>
松陰은 애제자 久坂玄瑞와 결혼하게 된 文에게 축하의 말을 했다.
"久坂玄瑞는 아직 나이 젊지만 이미 본 학원의 가장 뛰어난 인물이며
더하여, 천하의 영재이다.
너는 어려서, 아직 아내로서는 적당치 않다.
그러나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자는, 멀리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스스로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어떤 것도 안될 것이 없다
더우기 아내가 나아갈 길은 어렵지도 않으므로
다만 노력하지 않은 것만 걱정하라
술이나 식사에 관하여는 계획을 잘 세워 주부가 해야할 집안 일을 충분히 해내야한다
마음으로부터 남편에게 정절을 바치는 것은
신부가 가장 첫번 째로 신경 쓸 일이다."
* 아래 사진은
요시다 소인의 일생을
등신대의 인형으로 만들어 송음 박물관에 전시한 것.
숙부에게 양자로 가서 공부하는 어릴 적 송인.(오른 쪽 위)
마스시타무라주쿠에서의 가르침.
(주쿠 건물 증개축 당시의 모습)
-- 일하는 인물들은 훗날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
일제 식민지 시절 초대 조선총독부 총감을 지낸,
젊은 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있음(왼쪽 끝)
1년 수업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농사짓기와 일하기였다고 한다.
그저 시험지 잘 들여다보고 답 잘 맞추면 그걸로 다인
우리네 현 실정을 깊이 돌아보고 짚어보고 반성하게 하는 대목.
松陰은 정쟁에 휘말리면서 감옥에 가게되고
감옥에서도 강의를 계속하였다 한다.
떠나기 전 송별회 모습이라 한다.
감옥 안에서의 강의 모습
옆 방과 감옥 밖에서 강의 듣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에 찍히지 않음.
결국 스물 아홉의 나이에 처형.
스물 아홉이라니... 스물 아홉.
그 나이에 아직 사람 구실 못하는 젊은이들이 쌨고 쌘 요즈음..
대체 나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자꾸 돌아보게 하는...
<국가 지정 사적>
마쓰시타 무라 주쿠
소재지 : 하기시
지정 연월일 : 다이쇼 11년(1926년) 10월 12일
요시다 소인은 安政 4년(1857) 본가 杉(스기)家 택지 내에 있었던 작은 집을 개조하여
8조(다다미 여덟장 넓이)의 학원 건물로 사용하고,
다음해 10조 반 크기의 방을 증축했다
그것이 현재의 마쓰시타 무라주쿠로 宋陰 27세 때였다.
여기에서 宋陰이 교육한 기간은 1년이었고, 본가에서의 기간을 통산해도 2년 반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에, 이 비좁은 교실에서, 젊은 마쓰시타 학원 그룹이 길러지고,
安政의 대옥사에서 처형된 스승의 뜻을 받들어 尊壤討幕運動이 일어나,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다
동지의 주요 인물은 격동기에 흙으로 돌아갔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유신 정부의 중추로 서서 새로운 일본을 지도하게 되었다.
하기시 교육위원회
교육은 위대하다. 분명
그러나
교육의 질은 스승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