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바람
이런 바람이면
배 타고 나갈 사람들 큰일이겠다... 생각하다가
픽 웃는다.
환경이 사람보다 위에 있음이여
자다가 봉창 뚫은 것 맨치로 뜬금없이 뱃사람 걱정이라니...
아니, 그게 그러니까
엊저녁 뉴스에
시모노세키에서 부산 가는 훼리 <비틀>호가
고랜가 뭔가에 부딪쳐서 긴급 회항했다는 뉴스를 들은 탓도 있을테고
타이타닉 이후의 최대 선박사고라는 홍해 이집트 훼리에서
부모는 죽고 홀로 구출된 아이의 얼굴을
테레비 너머로 안타깝게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의식이란...
하여간
생면부지의 뱃사람들이 무지하게 걱정될만큼
지금 왕바람이 분다.
왕바람.
화장실에 앉았다가 환풍기에 역류되는 바람소리에
어이쿠! 가슴이 벌떡거릴만큼...
우리집 방에서건 거실에서건 창밖으로 고개만 돌리면 자동 감지되는
건너집 개인용 풍력 발전기가 씨잉씽 사정없이 돈다
생뚱맞게 또
-'저 집 오늘 전기 남아돌겠다' 생각하고
생각의 끝에는 또
-'뭔 느닷없이 오뉴월에 고드름 깨묵는 소리라냐?'
혼자 타박하고 혼자 실소하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면서도
-'저넘의 발전기는 뭘 저렇게 어지럽다냐?'
하도 빠르고 어지러워 불안할 지경.
마치 바람 때문에 발전기가 도는 게 아니라
발전기가 축이 되어서 바람을 만들어 내기라도 하는 듯
실눈을 하고 건너집을 자꾸 힐끔거린다
저 발전기처럼 넘치는 에너지를 받고 씽씽 쌩쌩 사는 사람을 보면
감탄스럽기보다도
멀미부터 나는 것도,
이를테면 무의식의 자동 거부 반응 쯤 되는 건지..
(안되는 사람들이 꼭 이딴 말을 하지!! ㅎㅎ)
아이고, 역시
쉬엄쉬엄 쉬기도 하고,
띄엄띄엄 살기를 멈추기도 하는 쪽이
훨 좋아.! 하먼!
하면서도
깜이가 걷어찬 커피 뒤집어쓰고 작동을 멈춘 프린터 앞에 앉아서
쉬엄쉬엄이 다 뭐야? 또 걷어차라고??
날래게 커피를 훌떡 마시고,
띄엄띄엄이 다 뭐야? 뺏기면 곧장 온 집안의 쓰레기통화 되고마는 걸,
엉성엉성 씹다말고 핫케익도 꿀꺽!!
그새 눈치 채고 쫒아와 내 팔 잡고 늘어지는 깜이녀석
빵 떼어주면 가루가 되어 온 방에 흩어질때까지
걷어차고, 앞발로 비비고, 입으로 물어서 조각내고...
헹, 그럴 줄 빤히 아는 걸, 못주지. 못줘.
끈질기게 팔 잡고 늘어지다가, 기어오르다가,
컴퓨터에 올라서서 자판을 겅정겅정 밟고 길길이 뛰다가...
헤헷,
마지막 조각을 함뽕! 입 속에 밀어넣었더니
급히 마신 커피와 더 급히 먹은 핫케잌 조각이
도무지 내가 감당해야할 한가함의 연속과는 어긋난 부조화와
표정없이 빤히 바라보는 깜이 눈빛이 얽히면서
가슴 언저리에 걸린 듯 뻐근...
하여간
왕바람은 미친듯 날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