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로고스 실내악단 연주회

튀어라 콩깍지 2006. 2. 10. 01:57

늦으면 주차하기 힘들거라는

옆지기의 친절한 전화를 일찌감치 받고도

깐닥거리는 시간에 헐레벌떡 주차장에 들어서니

혹시 그 새에 연주회장이 바뀐 건 아녀?

싶을만큼 텅 텅 빈 주차장.

 

파리 날릴랑갑네. 워쩐댜??

걱정하면서

회장에 들어서니

로비에 선 민단 직원들, 단장님.

아, 뒤쪽에 부인회장님도..

 

인사하고

회장 안에 들어서는데

뒷 자리 쯤 대충 앉으려는 걸

친절도 하셔라 부인회장님

따라들어오셔서 글쎄 내빈석으로 나를 안내하는데

맨 앞자리 정 중앙.

(호메! 이 일을 어쪄?)

부러 데려다 앉힌 걸 뒤로 가서 편히 있겠다는 말씀 차마 못드리고

끄응~!

혼자 한참을 앉았노라니

저쪽 끝에서부터 채워지는 인사들이

민단장님, 시장님... 늙수그레 점잖은 거물급들..

워메! 그렇당께. 내 자리가 아닌겨. 여긴.

 

오늘의 운세에 틀림없이 망신살이 뻗쳤겠다.

압정 마구 뿌린 자리에 엉덩이 박고 앉아 버팅기는 느낌. 불편 불편..

옆 자리로 옮기겠다는데도 기어이 그냥 있어라시더니만 

생각보다 많이 온 청중들. 객석을 가득 메우고

생각보다 많이 납신 거물님들도...

당연 자리가 부족하지.

이틈이다. 후딱 일어나서 뒷자리로 가려다 또 잡힘.

고작 두 자리만 옆으로 옮기고..

 

여태까진

내 포지션이란 게 거의

애갱탱이들 인솔해가서 끝날 때까지 단속하느라 부엉이 눈을 뜨거나

아니면 행사 끝나도록 발바닥에 모터 달고 앞으로 뒤로 잔심부름이나 찐 빠지게 해대던

그런 역할이었기 때문에

최소 나보다 열 살 더 많은 민단 임원들을 제끼고

상석에 모셔짐을 당한다는 것이

도무지 황망하고 어색하고 안어울리고 체질에 안맞아서

당최 죽을 맛.

 

하여간에

플룻 주자의 숨 들이키는 소리까지 낱낱이 듣는 자리에서

현악기를 다루는, 그 미세한 손놀림까지 뽀땃하게 감상을 하고

리셉션 자리. 호텔로 이동을 하니

맙소사! 살려주!!

시커먼 아자씨들 사이에 달랑 내 자리 하나.

나처럼 안 똑똑네에겐 거의 고문일 게 분명한...

깝깝타못해 아득함.

 

부인회 자리에 꼽사리 끼어볼까하고

낙점된 자리를 몇 번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그 막막한 자리에 앉아서

시계야 빨리 좀 돌아라.

아니면 예약 안되었으면서 매우, 허벌, 중요한 거물님이라도 납셔라.

기원. 또 기원.

 

잠깐 헐해진 틈을 봐서

연주자들 자리로 잽싸게 피난하는 것 까진 성공했지만

거기라고 별 수 있나뭐.

어차피 생면부지인데.. 다들.

 

그래도 서빙하는 호텔 직원을 불러서

이를테면, 여기 우롱차 한 잔 갖다주세요 라거나

콜라 한 잔 더 부탁해요 따위의

통역을 해주면서

끄트머리 자리에서 꺼떡꺼떡 저녁을 먹고

간이 가라오케에서 흘러나오는 구닥다리 옛노래를

엉터리 발음으로 열심히 부르는 걸 듣고 박수 열나게 치고 

기모노 좌악 빼입은 일본아줌마랑 교향악단 단원들을 세우고 사진도 눌러주고...

...

하~~!품~~!

집에 가서 깜이랑 놀고잪어.

 

단원들이 받은 꽃다발이 어찌어찌 내 손에까지 들려졌는데

한일친선협회 임원인

일흔 여덟의 애교 만땅 할머니께 드리고

겨우 끝나고 빠져나온 행사장.

 

뒤따라 달려나온 재일한국인 부부에게서

<조만간 저희 집에 오셔서 식사 한 번 같이 해주세요>

민단 무슨 부장님에게도 잡혀서

놀러 좀 오시소. 차라도 드십시다

네, 네. 그러지요. 알겠습니다. 대답 보태고서야

부르릉. 집 앞으로!!

 

문제는

죄다

내 안에 있는겨.

쪼매만 싹싹해지면 좋을 걸. 큼메 말여!!

 

어쩔것여?

생긴대로 살아야제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