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배앓이하듯이
흔해진 게 암이다.
멀쩡하게 학교 잘다니던,
어려서부터 영재 자질을 유감없이 내보이던 조카넘이
학교 신체검사에서 백혈병을 진단받고
뒤집어진 게 몇 해 전.
고 1을 그만으로 학교고 뭐고
골수 이식에 매여있다가
수술 하려하니 이번엔 또 혈액형이 RH 마이너스라나 뭐라나..
.....
잦은 입원과 골수 이식과 천문학적인 입원비, 수술비..
TV에도 방영될만큼...
그러더니만
검정고시 통과해서 의대 입학한 게 작년 일인가보다.
장한 녀석..
남들 다닌 학교도 못다니고 병원 무균실만 들락거리면서도..
이번엔
딸애의 양어머니나 다름없는
피아노 선생님이 암이라 하신다.
지난 주에 동경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셨는데
이미 수술을 한 번 했던 거라
재수술이라도 받게되면
다신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이게 왠 날벼락인지..
자식을 낳지 못하신 선생님 부부는
내 딸을 친 딸로 여기신다.
내가 아직 한국에 있을 때
다니러 온 딸애에게 노파심에서 교육 시킨답시고 자꾸 늘어놓게 되는 잔소리
이렇게 저렇게 풀어놓을라치면
우리 딸,
-"에..또.. 저에게는 엄마가 두 분 계십니다.
완벽한 엄마는 오사카에 계시고요
쪼끔 부족한 엄마가 또 한 분 한국에 계십니다"
눙치고 들면서 내 입을 막곤하던,
그 완벽한 엄마가 지금 암이시란다.
어쩔꼬!!
전화드리니
올해 3학년이 된 우리 딸,(당신의 딸이기도 한) 애를
어떻게든 졸업은 시켜야겠으므로
그냥 당신 댁에 살게하면서 대신 어머니가 더러 들여다봐주시면 어떻겠느냐고
차마 내가 먼저 말씀드리기 힘든 얘기를
오히려 부탁하듯이 말씀하신다.
사람 복이 있다는 거.
딸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떡애기 때 낮동안 맡아 길러준 아줌마부터가 다시없는 분이셨다.
깔끔하고 조용하고 나직하고...
무엇보다 딸애를 어찌나 끔찍히 이뻐해주셨던지
저녁이면 우리집으로 업어오는 것조차 아쉬워하셨다.
그분의 아들,
미국 유학을 가면서
학위 끝내고 귀국하면, 결혼하고 애 낳아서 그 애를 줄테니까
자기네에서 그냥 키우게 해달라고... ㅋㅋ.. 벌 받을 소리를 마구 지껄이면서
안떨어지는 발길 떼서 유학 떠났다.
초등 입학 때는
옆지기랑 내가 일본에 유학이란 걸 와서 시댁에 맡겨두고 들어왔더니만
담임선생님이 내 후배.. 전부터 잘 알던... 서로 호감을 갖던..
초등 근무하는 다른 후배들도 다투어 <이달의 학습>같은 걸 챙겨다 줘서
엄마가 한 번도 봐주지 않은 공부지만
줄창 등수 놓치지않고 곧잘 했다
귀국했다가 다시 파견들어오면서 데리고 들어와서 초등을 일본에서 마쳤는데
피아노 선생님도 그때 만났다
딸애가 예고를 거쳐 음대에 다니기까지,(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내내 뒤를 봐주신 선생님.
딸애는
꼭 필요한 사람이 준비되었다가 짜잔! 나타나기라도 하는 듯
언제나 가장 적합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도움을 주곤 한다.
신기할만큼..
생기기는....(아무리 내가 엄마라지만.. 뎃생력이 그래도 괜찮은 눈으로 보면...)..음...
그작저작 못생겼는데
많은 분들께 귄을 타는 것도 천운 아닌가?
애를 못낳으시는 선생님 부부가
어찌어찌 딸애를 이뻐하셔서 양딸 달라할 때 단번에 거절했는데
(내 딸은 한국인이니 끝내 한국인으로 살게 하겠다는, 굉장한 의지로..)
법적인 형식은 분명히 한국인이며 우리 딸이지만
내용은 버얼써 절반. 뚝. 그분들의 딸이다.
완벽한 엄마가 병에 힘드시니
딸애의 낭패스러움이나 걱정이
내 걱정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어째야할지
처음 일이라 진짜 모르겠다.
동경으로 따라가 간호를 자처할 수도 없고..
같은 일본이라지만
여기서 오사카는 버스로 물경 여덟시간 거리다.
JR이면 세시간 거리지만 동네 마실가듯이 들락거릴 수 없는 게
전철비가 서울 오가는 비용에 맞먹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안녕을 묻는 거
그거,
괜한 너스레는 아닌가 보다.
이 일을 어쩔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