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저는... 한국인입니다...

튀어라 콩깍지 2006. 4. 28. 05:03

우여곡절.. 들어가게 된 <카페>에서

어쩌구저쩌구...

좌우간 글을 올리라하여 냅다 자판 두들긴 거

그대로 저금내서 다시 여기 올립니다.

 

 

 

민단 부인회 모임 날.

부인회라기보다 할머니회...

나보다 못해도 열 살 씩은 연배인...

 

한일 친선협회라거나 민단 무슨 모임 따위...

어떤 제목을 붙였거나 내겐 불편한 자리여서

어떻게든 안가보려 삐대보지만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여타의 모임과 달라서

고만고만한 얼굴들이 오브레기 둘러앉는

부인회 자리엔 빠지기가 힘듭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한국 노래 가르칠 때 반주해주는 것 빼놓고는

줄창 뒷통수로만 만나고 오는 자리지만

빠지면 어쩐지 미안하고, 짠하고, 뭔가 크게 잘못한 것 같아서

그도 또한 맘이 불편하니

말 잘듣는 아이처럼, 또는 태엽 감은 자동 인형처럼 

끄떡끄떡 나가 앉았곤 하는 자리지요.

 

이번 달 부턴

회원들 생일을 챙겨드리자길래

그것 나쁘지 않지.. 싶어서 선물 사러 나간 백화점.

 

선물이란 게 늘상 받을 땐 간단하지만 준비할 땐 마땅한 걸 고르기도 그렇고

받을 사람 취향도 그렇고 주머니하고도 타협이 잘 되어야 하고..

이런저런 필요 충분 조건들이 잽싸게 딱딱 맞아떨어져주면 좋으련만

생일 맞는 사람들은 세 사람인데 골라두면 물건이 하나 뿐이라거나..

같은 게 아니더라도 엇비슷한 것들을 당최 찾을 수가 없다거나

완전 따로따로면 서로 비교해서

행여 만에 하나라도 섭해할까봐..

따위의.. 안해도 되는 걱정까지 당겨하면서

마춤한 걸 고르러 다니다보니

발바닥이 아픕디다

 

자판기에서 뜨거운 깡통 홍차를 떨어뜨려 땄는데

문득

옆에 와 앉는 사람 그림자.

얼핏 보니 얼굴에 흉터자국.. 아직 아물지 않은 딱쟁이..

살짝 얼이 빠진 표정으로 멀뚱하니 앉아서 빤히 바라보는 중.

 

처음엔 술을 한 잔 사달라더니만

통 모르쇠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음료수 하나만 사줄 수 없겠느냐고...

조르는 내용과 달리 말이 더듬더듬.. 갈길을 못찾고 허둥거리는 품새가

맨날 어디서 얻어맞는 빙충이같기도 하고

아주 선수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남자...

-"저는 한국인입니다"

이럽니다. 글쎄. (윽!)

 

가끔 백화점 가면

지나는 사람들을 아랑곳 않고 길을 막은 채

사진 찍거나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가까이서 안봐도 한국인들이고

국제훼리 항 가까운 전자 상가 꼭대기 층. 전동 안마의자에 죽치고 앉아서

절대 안비켜주는 아줌마들은

십중팔구가 부관훼리 승선 시간을 기다리는 한국의 보따리 아줌마들이어서

의자마다 큼지막하게

(10분 이상 앉아있지 마세요!!) 경고문을 붙게 만드는...

극성 한국인들은 심심찮게 만나지만

교포 2세인지 3세인지(본인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렇게 헤부작한 꼴로

이렇게 황당한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나사 풀린 표정을 짓고 있는 한국인은 여기 와서 본 적이 없으니

착잡!!

.......아직 어려보이는데...

 

-"뭐 마실래요?"

 

(물론 한국말 알아듣지 못하지요.

 그렇지만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말 할 수단이 뭐겠어요?)

 

휘둥굴 눈 뜨고 허겁지겁 음료수를 빼서 천진하게 웃는 남자(아이?)를 뒤에 두고

에스컬레이터를 탑니다.

 

찬바람이 휑하게 가슴을 훑습니다.

 

방황도 등뼈 꼿꼿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방황을 방황 아니게 떠미는 것과 같아서

그 또한 어긋물린 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