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드락 자드락
비 내립니다.
참 나직하고 조신한 걸음입니다.
민단 부인회 모임이 있었지요
한국사 중에서 고구려 문화를 공부하고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ㅎㅎ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ㅎㅎㅎ
창 밖에서 빗줄기가
나름대로 내숭 떨면서
자분자분
종알거립디다
옛날 간 날
호랭이 담배 묵던 시절까지는 아니지만
어쨋건 퍽이나 오래 전..
만나기만 하면 비 쏟아지던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당최 늦터져서
그게 그러니까
첫 남자친구가 되는 줄도 모르고서
깽둥깽둥 까불기만 하던
그런 때 였지요
명색 스물도 넘고 대학 들어간지도 2년 쯤 지난 뒤인데도
우리 아버지 말씀을 찰떡같이 잘 들은 저는
<아버지 빼놓고 세상 남자들은 다 늑대다>에 길들어져서
그저 여자친구들하고만
죽어라 붙어다니던 때였지요
그 친구
남자로 안보입디다.
여자애랑 똑 같이 보여서 여자인 줄 착각하고
갱 에에지 시대를 못 벗어난 어린애들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는 여자친구들 속에 마구 찡겨넣으면서
그렇게
만나곤 했지요.
지금도 식구들까지 데불고 와글와글 만나는 내 친구들처럼
그렇게
그 친구하고도
내내 계속될 줄 알았더니만
-"나 결혼 해. 한달 뒤에..."
미술반 애들을 서른 명 쯤 이끌고
함께 야외스케치 다녀 오던 날
푹 내던진 내 말에
표정이.. 아주... 딱딱해지더니만
글쎄 나더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구만요.
허리를 구십도로 꺾어서 꾸뻑 인사하면서
놀랜 쪽은 저였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우리 그런 사이 아닌데..'함시로...
나중에 생각하니
순둥이 그 녀석도 나름대로 시시때때
언질을 줬다는 생각이 듭디다.
이런이런!!
필요할 땐
그저
알아서 짐작해주려니... 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그 친구도 그땐 몰랐던 게지요
서로 덜 떨어져서... ㅎㅎㅎ
훌쩍 큰 아들넘 보다가
뜬금없이 어리버리 수줍던 그 애가 생각났습니다
저 녀석도 틀림없이
확실하고 똑 부러진 말하곤 거리가 멀테니
혼자 가슴앓이 하고도 남을 넘이네... 싶음시로..
빗 소리 나직한데
그보다 작은 소리로 피실피실
혼자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