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자드락 자드락

튀어라 콩깍지 2006. 5. 10. 20:43

비 내립니다.

참 나직하고 조신한 걸음입니다.

 

민단 부인회 모임이 있었지요

한국사 중에서 고구려 문화를 공부하고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ㅎㅎ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ㅎㅎㅎ

 

창 밖에서 빗줄기가

나름대로 내숭 떨면서 

자분자분

종알거립디다

 

옛날 간 날

호랭이 담배 묵던 시절까지는 아니지만

어쨋건 퍽이나 오래 전..

만나기만 하면 비 쏟아지던

남자애가 있었습니다.

 

당최 늦터져서

그게 그러니까

첫 남자친구가 되는 줄도 모르고서

깽둥깽둥 까불기만 하던

그런 때 였지요

명색 스물도 넘고 대학 들어간지도 2년 쯤 지난 뒤인데도

우리 아버지 말씀을 찰떡같이 잘 들은 저는

<아버지 빼놓고 세상 남자들은 다 늑대다>에 길들어져서

그저 여자친구들하고만

죽어라 붙어다니던 때였지요

그 친구

남자로 안보입디다.

여자애랑 똑 같이 보여서 여자인 줄 착각하고

갱 에에지 시대를 못 벗어난 어린애들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는 여자친구들 속에 마구 찡겨넣으면서

그렇게

만나곤 했지요.

 

지금도 식구들까지 데불고 와글와글 만나는 내 친구들처럼

그렇게

그 친구하고도

내내 계속될 줄 알았더니만

 

-"나 결혼 해. 한달 뒤에..." 

 

미술반 애들을 서른 명 쯤 이끌고

함께 야외스케치 다녀 오던 날

푹 내던진 내 말에

표정이.. 아주... 딱딱해지더니만

글쎄 나더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구만요.

허리를 구십도로 꺾어서 꾸뻑 인사하면서

 

놀랜 쪽은 저였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우리 그런 사이 아닌데..'함시로...

 

나중에 생각하니

순둥이 그 녀석도 나름대로 시시때때

언질을 줬다는 생각이 듭디다.

 

이런이런!!

 

필요할 땐

그저

알아서 짐작해주려니... 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그 친구도 그땐 몰랐던 게지요

서로 덜 떨어져서... ㅎㅎㅎ

 

훌쩍 큰 아들넘 보다가

뜬금없이 어리버리 수줍던 그 애가 생각났습니다

 저 녀석도 틀림없이

확실하고 똑 부러진 말하곤 거리가 멀테니

혼자 가슴앓이 하고도 남을 넘이네... 싶음시로..

 

빗 소리 나직한데

그보다 작은 소리로 피실피실

혼자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