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다.
고향이 같은
재일한국인 2세의 초대로 그 댁에 갔어.
하도 오랫만의 <사람 틈에 섞여듬>이라
괜시리 머리가 무겁더라구.
서울 어디 대학에서 교수님을 하시다가 퇴직하시고
지금은 이쪽 어디 대학에 명예교수로 계시는 분과 동행했지.
서점에서 미리 만나서 택시로 간다길래
차를 두고 전차로 나갔더니
글쎄 가기로 한 집이 우리집에서 멀지도 않은 곳이야.
걸어서도 가겠구만은...
집 앞 역은 간이역이라 전차 들어오는 시간 간격이 길지.
나이도 어린 게(??) 늦으면 안되잖여.
약속시간보다 10분은 빨리 들어서서 조신하게 기다려야지... 싶으니
감은 머리카락 채 말리지도 않고 튕겨나갔지.
하도 오랫만에 얼굴 그림을 그려보니까 뭘 먼저 바르고 뭔 나중에 덧칠해야하는지
헷갈려서원..
하여간에 전차는 거꾸로 거슬러 갔고
처음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차를 가지러 가신 교수님을 기다리느라 또 한길에 오래 서있었지.
안해도 되는 고생을 시키는구만.....속으로만 투덜쭝얼...
초대 감사 답례로 가져갈 과자를 사고
서점에서는 <아시아 미술집> 골라서 사줘. 하고 내밀며 눈에 안뵈는 반항(크~!)을 하고
도로 우리집 앞을 지나서 그 댁에 갔더니만
왐맘마!!
거실 장식장을 가득 메운 베네치아 유리잔들이 알록달록 눈부셔
내가 좋아하는 투명한 빛깔들...
체리 빛깔의 빨강과 잘 익은 수박껍질같은 초록과 지중해처럼 파란 빛깔의...
(아차! 실수!! 지중해를 아직 못봤어!!.
하여간 모딜리아니 여자들의 눈빛을 닮은...
아차차!! 또 실수!!! 모딜리아니 여지들은 초록눈이 많아..
하여간에 투명의 파아란... 파랗고 파아란... 파랑보다는 이름도 근사한 울트라마린의...)
숨막히게 좁은 보통의 일본집 답지 않게
무도회장처럼 넓다란 거실.
가운데로 영화에나 나오던 식탁이... ㅎㅎㅎ
잔치상이야 원래 이쁜 그릇에 색깔 맞춘 음식을 쪼끔만 올려도 화려해뵈는 법이라 그건 그런다.... 칠려고 했더니만
아니야.
머리에 흰 꼬깔 모자를 올리고 더블 버튼 채운 흰 웃옷의 요리장이 글쎄 나오시더라구..
에쿠쿠! 뜨과라!
놀랬지.
나긋하고 날씬한 젊은 여자들은 따님과 며느리.
그러니까 안주인되시는 분은
말 그대로 자기 자리 지키고 앉아서 접대를 하시더구만.
우리네는 손님 오시면
남주인이야 버팅기고 앉아서 으허허. 드시지요.
차린 게 통 없습니다.으.허.허.
팥쥐어멈이 콩쥐 부르듯 양씬 부려먹고서도 드실만한 게 있는 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고
안주인은 몇시간을 서서 서대면서
종아리에 타조알이 생기도록 종종 걸음을 치고
국 식었어요? 뎁혀오지요뭐. 호호
갈비 부족해요?? 아이구 더 가져올께요. 많이 드세요호호.
사이사이 전도 부치고, 숟가락?? 아유 죄송해요 금방 가져올께요호호.
샐러드도 만들고 맥주병도 열나게 들고나고...
따라온 애녀석이 물 엎질러도 아유 괜찮다 아가야 오호호 뭐 어때요 앤데요뭘...
물걸레 찾으러 가고..
하다보면 안주인 입엔 밥알 붙을 틈도 없고
다들 돌아가고 나면 지쳐서 밥 생각도 없고..
딱 굶는 날이 잔칫날인데
전혀.. 안그렇더구만.
말해 뭐해.
요리장이 납셨더라니까.
것도 전 세계를 쓸면서 중요한 거점에서 인정받는 쿡커였다는데뭐.. ㅎㅎ
우아하게 앉아서
접시 무늬가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복어회를 듬뿍, 먹고
구운 마늘을 사정없이 많이 곁들인 스테이크..
개인별로 놓인 횟감.
..
아주.. 주눅들 뻔 했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고향이지만(엄밀히는 아버지 고향)
반갑다고, 이게 보통 인연이냐고,.. 아주 그냥 무리를 하셨나봐.
인연이라..
그렇지
옷깃만 스쳐도 억만겁을 준비한 인연이라는데..
일흔이 다되시는 쥔어르신.
뵙기엔 겨우 쉰이나 되어보이는데..
기분은 아주 서른이시더구만.
기분 오르니 노래방 기계를 처억 틀으시고
아버지께 배운 옛날옛적 한국 노래를 하시질 않나.
우와~~!!
구렛나룻 멋진 생김 아니고라도
순간 반하고 싶더라니..
이건 뭐 남진이랑 나훈아랑이 울고가게 생겼어.
어찌나 구수하고 근사한 목소리로
어찌나 구성지고 노련하게 불러넘기는지
갑자기 노래방 기계를 사고싶더라니.. ㅎㅎ
(우리집엔 노래방 기계가 없어서 그렇게 못부르는지 모르잖여?? 안그려??)
경기도가 고향이신 교수님은 또
우연한 기회에 내 고향을 가보셨대.
60년대에.. ㅎㅎ
그리고는 반해서 아주 그쪽 지방 전문가가 되셨다는구만.
방언, 지형, 민간신앙을 연구하셨다지.
정작 옆지기랑 나보다 우리 고향을 더 속속들이 잘아시니 여러모로 기 죽었어. ㅠㅠ
예전엔 우리집도 한 주를 안걸르고
손님들이 바글거렸는데..
퇴근하면서 슈퍼부터 들렀다가 다리 끊어지게 달려와서
가방 내던지고
옷갈아입자마자 쌀 씻어 밥 앉히고 멸칫물 우리고..
한 두 시간에 잔치상을 거뜬거뜬 차려내곤 했는데..
사람 발길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그것도 습관인가?
혼자 있는 게 편하기만 하니..
누가 온다면 오기도 전에 머리가 아프니..
온다는 사람도 없지만..
사람 속에 섞이는 걸 극단적으로 피해다녔지.. 싶어.
평생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꼈으니
이럴 때도 있어야지뭐.
버릇되어서 굼뱅이로 탈바꿈하지만 않는다면...
두분
일흔이 다 되어서
쉰의 겉모습으로
서른의 일상을 살고 계시는 두분이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이 밤에 외우는 주문
콩깍지
젊어져랏!! 이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