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狂) 미친다(及)
(1)
지금 읽는 책.. 정민교수의..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不狂不及.
......끄덕끄덕!! (난 그동안 지나치게 제 정신이었던 거야!!)
(2).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어.
약속보다 한시간 전에 집을 나섰지.
아, 맨얼굴!!
또 잊었군.
노리깽깽 환자 같을라.
하면서도 집 문을 나설 땐 늘 잊고마는 화장.
어차피 두세 번 만나면 가면 벗고 맨 바탕 들이댈텐데뭐..
첨부터 들켜버리고 말지.
우중충한(?) 살빛으로 총총 그냥 갔어.
세 정거장 건너면 되는데
각 정거장마다 갈아타는 번거로움.
그 짧은 구간에서
김훈의 강산무진을 읽어내렸어.
옆에 앉은 떠꺼머리가 힐끗 건너보더라.
앞에 선 친구에게 "굉장하다. 통 모르는 글씨다" 하면서...
짜식!
승강장 끄트머리에 부딪친 빗물이
무릎까지 튀었어.
(3)
고쿠라(小倉)역 남쪽 출구를 나서서 커다란 돌기둥에 윗몸을 기대고
내쳐 김훈을 읽었지.
통통통.. 글자가 콩알처럼 굴러
짧아서 더욱 힘 실리는 문장들이 기운찬 빗방울처럼...통통통..
약속시간까지 15분 쯤 비었더라.
작정한 듯 달겨드는 하늘
선배는 정확한 시간에 왔어.
"꼭 거기 서있을 거라고 예상했네"하면서
처음 보는 얼굴도 함께.
나중엔 걸어다녀야 할 길이므로 잘 봐두련 했는데 모퉁이 두번도 돌기 전에 길을 놓쳤지.
내가 자주 그래.
민단 사무실
사무장이 혼자 책상에 다리 걸고 앉았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인사 나누고 저녁부터 먹으러 다시 나왔지. 셋이서만.
사무실에 남은 사무장님이 조금 신경 씌였지만 이게 일본식이야(?) 서로 상관 않는 거..
텐자루... 튀김 곁들인 메밀국수라는 말이야.
양이 많았는데 말끔히 쓸어먹고는...(씩씩! 아구, 배 불러)
소바를 삶아낸 물까지 남은 쓰유(소스) 컵에 부어서 마셨어
누룽지 숭늉맛처럼 고소하더라....고소...
(4)
강의실엔 한 30명 쯤 앉았던 듯 싶어.
기타와 하모니카, 보면대, 발판, 악보 파일 등을 챙겨오느라
우산도 없이 온 고선생님이 연주 전에 음악 일반 강의를 시작.
그게 실수였을 거야
함부로 떠드는 소리.. 소란한 초등교실처럼...
급기야 젊은 애들은 자리를 뜨고말아.
딱하더라.
우선 통역이 필요하니 두배로 지루하기도 했겠지만
강의. 참 못하더라. ㅎㅎ
목소리부터 기운이 쪽 빠져서...
게다가 골라온 곡들이 캄캄 어두워.
강의도 일종의 쇼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
보다 전문적인 쇼.
철저히 준비하고,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신기(神氣)를 폭발시키는 힘.
직선으로 꽂아넣는 번갯불 섬광.
필요한 건 결국 에네르기라는 얘기구나
(5)
끝나고 나니 선배. 나를 불러세우고 소개했어.
그림, 노래, 풍물, 한국어... 소개 말에 치장이 심했지. 거북하더라.
조금 붉어져서 그냥 있었지
그런데 확인을 하겠단다. 당장. 노래를 부르래. 허 참.
선배 바라보니 대책없이 활짝 웃고만 있어.
포기하고, 조금 전 고선생님이 연주한 곡 중에서<등대지기> 불렀지.
다들 허밍으로 따라하더라구. 익숙한 곡이구나.. 싶었지.
반주 맞추면서 음이 너무 높다고 고선생님이 마구 걱정을하는데
사실은 내 음 높이엔 오히려 적당했어.
고선생님이 후아!! 잘부르십니다.. 아무래도 성악 공부를 하신 것 같습니다... 놀랬어.
후후.. 가늘게 내리는 비처럼 그냥 웃었지
빗소리는 장대하지요. 벽이랑 천정이 아주 적당히 소리를 받아내지요
그러니 누가 불러도 후아! 했을 거야.
2학기 강의는 무조건 놀아야겠다고 정했어(??)
될 수 있는한 쿵짝거리면서 뒤죽박죽 섞어놓고, 기를 쓰고 같이 놀아내야 되겠다는 생각.
미친 듯이.. 不狂不及이라잖아.
(6)
계단 아래서 길로 나설 수도 없을만큼 빗줄기가 맹렬했어
빗줄기가 먼저 미치고 있더라니..
고쿠라에서 모지, 모지에서 다시 시모노세키까지 왔는데 그만
JR이 딱 멈췄어
더 못간대. 비 땜에..
한시간 쯤.. <강산무진>을 다 읽고 다시 읽기 시작했지.
수첩 꺼내서 아주 메모까지 하면서
파리약 뿌린 모기장 안처럼 전철 안이 고요했어
누구 하나 투덜거리거나 언제 갈 거냐고 묻는 사람도 없이..
핸드폰마저 숨 죽여 받으니 막막강산에 홀로 떨어진 듯 도무지 고요~~!!
그 동안도 빗줄기만 차창을 정말이지 미친 듯 할퀴더라.
옆지기도 강의 다녀오다가 오도가도 못하고 피난 중이라는 전화가
아들넘 배 고파서 라면 끓였다는 전화 뒤에 바로 걸려왔어.
이런 날 왕복 세 시간을 고속도로라니.. 목숨 내놓고 뛰는군.
전철 안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고 퀴퀴한 냄새 진동할 즈음 전철이 슬금슬금 기기 시작했지
다시 한 정거장... 12시는 진즉 넘었고.
옆지기는 나보다 쪼끔 뒤에 들어왔어
물이 차 안까지 차올라왔더라는구만. 엔진은 꺼지고... 토끼 용궁 다녀오는 길..
기운 센 천하장사. 어떤 트럭 운전수가 자기 차 두고 내려와서 차를 힘으로 끌어내더니
역시 안돌아가는 핸들을 억지로 돌려서 엔진까지 돌아가게 해줬다는구만.
고맙기도 해라.
아, 이런 날은 건너뛰기도 해.
저 고진한 위인이 강의를 걸러?? 절대 그럴 리 없지. 차가 잠기면 걸어서 간다고 나설 걸.
(7)
밤엔 줄창 장대한 음악을 들었지.
모처럼의 메일도 한 잎 날리고
시인들의 방에서 시도 몇편 읽었어
아, 참 잘 쓴다.
속을 아주 꼭꼭 짚어내는구만..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어떤 고비든 삶의 곡류를 돌아내면
새로운 인연들과 만나서 얽히고 부대끼면서
실은 고래로부터 예약된 듯한 일상을 또 살아내게 되는 거야.
나는 지금
또 하나의 곡류에 서 있는 걸까?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답게 얽히기를... 감히 꿈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