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엿(깜이+뽀미+항아)

서서 밥 먹는 아줌마

튀어라 콩깍지 2005. 11. 17. 14:24

(1)

 

개수대 뽀짝 앞에

식탁이 있다

식탁 바로 뒤에 냉장고

냉장고 바로 옆에 가스렌지.

세 발자국 안에서 식사와 관련된 동선이 해결되는 간편함.

 

집이 좀 그렇게 생겼다

식탁을 벽에 붙여놓으면 오가면서 빙빙 돌아다니게 생겨서

그렇다고 거실 가운데에 놓기도 좀 그렇고

밥 먹고 사는 일에만 전심전력하는 식구들... 어째 좀 마뜩찮지 않은가?

해서 몸 굽히는데 걸치작거리지만 않도록 식탁을 놓았더니

몸뚱이 반바퀴만 돌리면 만사 해결.

매우 강뚱함!

 

그런데 의자 넷을 텅텅 비워둔 채로 앉지 못하고

요새 늘상 서서 밥 먹는다

밥 그릇 들고 반찬 한가지만 겨냥해서.

 

물론 깜이 녀석 때문이다.

지 밥 지 혼자 다 먹고 내밥 뺏어먹으러

지가 웨려 바쁜 걸음으로 우루루 달려들곤하니까..

 

식탁 위에 올라앉아서 고개를 갸웃이 나를 쏘아보는(?)

깜이녀석 시선을 모른 체 하면서

밥 그릇 턱 밑에 받쳐들고

젓가락만으로 찌개에 든 김치를 사냥하는 중인데

웬일로 남편이 들어온다.

쫌만 빨리 오던지 아주 쫌만 더 늦게 오던지 하잖고...

기분 찜찜.

 

그냥 젓가락질.

겨냥한 김치 정확히 콕 찍어 건져올리면서.

 

이렇게 안살려고 했는데...

 

(2)

 

대학 때

실기실에서 밥 해먹고 잠 자면서

아예 터줏대감 행세를 하던 여름방학 때

 

연수 받으러 온 동창이 불쑥 들어왔다

나는 휴학했다가 복학하여 아직 학생이고

동창은 먼 섬마을 선생님.

 

하필

그때사말고

펑퍼짐한 냄비에 라면을 끓여서

모델 대 위에 올려놓고

한다리는 모델대에 매우 방자하게 걸치고 앉아

붓가락을(가느다란 붓 거꾸로 집어서) 막 찔러넣으려던 참.

 

냉방 없는 여름 실기실은

성능 좋은 찜통이었으므로

길다란 머리는 똘똘 틀어올려 또 다른 붓으로 콕 찔러누르고,

집에서도 잘 안입는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완전 솥뚜껑 운전수의 전형적인 폼으로 건져올린 라면 가닥!

 

그 절호의 순간에 그 녀석이 턱. 문턱을 넘어왔다. 하필 그 녀석이..

 

방학 때 실기실은 거의 비어있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전공이 같은 친구와 아주 홑이불 보따리를 들고가서

마음놓고 내 살림을 늘어놓은 터였으므로

자작 피난민촌 같은 꼬락서니였을 게다. 아마. 

 

그 녀석

그러니까

신입생 시절

일찌감치 내게 휘황찬란한 편지를 보냈다가

꿀 먹은 벙어리로 대답 한마디 안해서 딱지 놓은 녀석.

 

그것 참.

그런데도 내내 우아한 환상을 키워주고 싶었던 걸까?

 

그 날

퍼질러 앉아서

잘 안먹는 국물까지 홀랑 다 마셨다. 호르륵!

다 먹을 때 까지 그 녀석 물끄러미 바라봤다. 안 가고

방자한 내 옆에 여전히 얌전히 앉아서... (!@#$%!!)

 

승승장구 승진을 해서 지금은 아주 높으신 양반이 되었다는 소식.

ㅎㅎㅎㅎ

 

깜이 피해서 선 채 밥 깨작거리다가

불쑥 남편이 들어오니

느닷없이

해묵은 기억이 정수리를 친다.

 

푹 퍼진 라면발을 건지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멋적어하며... 

 

옛날 일을 야금야금 추억하는 것.

회고란 곧

나이 들었음의 반증일 터.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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