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시)

저녁 스며드네-허수경

튀어라 콩깍지 2007. 2. 5. 11:50

 

                                                <정명화 畵 / 푸른밤>
 
 
 
 
저녁 스며드네
 
 
                                                                     허수경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
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
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 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
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
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
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
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
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빛 아래 빛 아래 그렇
게 그렇게 스며드는 저녁, 저녁 스며드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2005. 문학과지성 시인선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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