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시)

발작-황지우

튀어라 콩깍지 2006. 12. 8. 01:50

발작

 

 

                             황지우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기적(奇蹟) 아녀

 

 

Ide Were Were : Deva Premal

 

 

 

 

날 저문다

찌푸린 표정 한 번도 풀지않은 일기.

부실한 안개비에도 폭삭 젖었다

문어발보다 고집스런 먹빛으로

하늘과 땅은 이미 경계를 뭉갰고    

빨판 닮은 가로등이 별로 뜬다

 

밥 때 저물고 다시 한식경

아직 아이 돌아올 때는 멀고

들여다보지 않는 TV  

습성으로 리모컨을 누르면

인기척 자동 감지 인형처럼 화들짝 웃는 MC

그들의 호들갑만 자글자글 끓는다.

여전히 추상인 그들에게

내 빈 저녁의 옆구리를 부린다.

끼고 앉은 쿠션처럼

바닥이 부풀고

벽이 부풀고

천정이 부풀어서

분류기호도 매기지 못한 허기를 더듬고 

땜방질 하는 중

보장도 받지 못할 부도수표같은..

 

화면 너머에선 젊은 여자애들 셋

노천 온천에 들앉아 청주를 홀짝이는데

그 향기 내 코 끝에 어룽질 리 없건만은

섞여 앉은 듯 달큼하게 웃어도 준다

 

어느날 문득 공중파가 역류할지도 몰라 

그 땐 어느 허공 쯤에서

오늘 제조한 미소가 서로 충돌할지도 모르지.

별똥별이 튈지도 몰라

감전을 대비한 상비용 웃음. 

잃어버린 통장처럼 

일상의 곡류에서 다시 길을 헤맬 때

요긴하게 꺼내썼으면.. 싶어서

 

화면 벗어나면

꼬부려 앉아, 저리고 아픈 다리의 통증 뿐인데

이렇게 자꾸

길어지는 설명처럼 뿌리 깊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때때로 소스라친다.

 

실비에 옴팍 젖어 차가워진 이마

짯짯이 닦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