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야마구치에서

튀어라 콩깍지 2006. 11. 12. 11:59

전시장을 둘러보고

안내의 허락을 받은 다음,

허락 받았다는 표식을 목에 걸고나서야

내 그림 앞에서 겨우 사진을 한장 찍고,

(좌우간 일본인들 철저하게 꽉막힌 건 알아줘야 해)

그쪽 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애들을 만났지

 

옆지기 배려로 기왕 거기까지 가니 애들 저녁 사줘야겠다 작정을 하고

미리 연락을 해뒀거든.

엄청나게들 먹더라.

여자애들이 더 잘먹어.

풋풋하고 싱싱한 웃음 낭자하게 흘리면서..

얼마나 이뻐보이는지..

 

표현한다는 건 참 아름답구나. 생각했지.

 

나는 그 시절...

아니올시다였던 것 같아.

그렇게 화들짝 터트려본 적이 없어.

뒷치닥거리는 잘하고 다녔지. 아마. 그랬어.

 

"나도 느이들처럼 유학한 적이 있거든.

 주머니가 너무 헐거워서 통 뭘 먹을 수가 없더라.

 글쎄 고기가 먹고 싶어지더라니까. 몇달씩 못먹고 있다보면..

 한국에선 생각도 못했지. 먹어라 먹어라 해도 잘 안먹었는데뭐..."

 

옆자리 애가 깨작거려서 익힌 고기 집어주며 "많이 먹어라" 추임새를 넣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다른 애들까지도 일제히 터트리는 말.

"맞아요. 실은요. 저희도 정말 고기가 먹고 싶었어요"

허겁지겁.

그 말의 효과가 대단해서 일시에 내숭을 풀고 마구마구 먹기 시작.

귀엽기도 해라.

 

알지. 알고말고.

오리지널 유학생 시절.

한사람 장학금으로 둘이 학교를 다니면서 물감이며 책이며 학비며..

줄일 수 있는 게 식비 뿐이니 자판기 커피 한잔도 뽑아 마실 수 없었지.

손톱이 부스러져 나가더라니.

빈혈 심해져서 팽팽 도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한 푼도 부쳐받지 않고 배겨내기가 상상을 넘더라는 것 알지 그럼.

 

막힌 둑 허물듯

젓가락 깨작거리던 아이조차 가세하는 말.

"요 얼마 전 일인데요. 회가 먹고 싶은 거예요.

 사먹을 형편은 안되고 무척 먹고는 싶고.. 어쩌겠어요.

 생선회 사진을 옆에 펴놓고요. 한국에서 가져온 초고추장만 떠먹었어요"

 

애들은 왁자그르 허리 꺾고 웃는데

아아, 싸르르...저미는 마음이라니...

 

예전,

사촌 동생애가 그러더라니

혼자 집 떨어져 처음 자취를 하면서

누구하고도 말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적막함이 어찌나 힘들었는지

라디오 틀어놓고서

뉴스 시간 어나운서가 "안녕하세요?" 진행 전의 의례적인 인사를 하면

"네, 안녕해요" 라디오를 향해 말 대답을 했더라는...

그애 생각이 불쑥 나더구만.

 

다베호다이(맘 껏 먹는 코스)도 정해진 시간이 있어.

더 먹어라 하면 얼마든지 더 먹을 기세의 애들을 채근하여 디저트까지 먹게하고

다음 예약 손님을 받아야한다는 식당 형편 때문에 털고 일어났지.

 

정부 장학금이라도 받는 애라면 그래도 괜찮지.

넉넉한집 자식이라면야 말할 것도 없고.

우리처럼 숭악한 자력갱생 유학생이라면.. 아이구. 안다 알아.

배 고픈 거.. ㅎㅎ

(아니지 참. 옆지기도 짱짱한 장학생이긴 했다참. 혼자 살았으면 괜찮았을 걸

둘이 같이 학교를 다니려니 그래서였지.. 물감 값이 오죽 또 많이 들어?

그러고보니 순전히 나 때문이네??)

 

암튼 그때 못먹고 배고프던 기억에

유학생이라면 중늙은이건, 어린 학생이건 가리지 않고

고기 사 먹이고 싶어서 안달이었지... 고기라니... 헛 참.

 

딸애랑 같은 또래의 애들.. 그 왕성한 식욕.

예의 똑바르면서도 거침없는 싱그러움들이 눈 부셔서 덩달아 행복하더라.

 

애들...

나도 저렇게 푸른 때를 지나왔던 거구나.

이제야 알겠더라니.. 노오래진 다음에야. ㅎㅎ

 

"시험 끝나면 그때 오세요. 천천히요. 지금은 괜찮아요"

전화 너머에서 딸애가 종달거려.

얘도 뭘 좀 먹여야 하는데...

맘이 저 혼자 달음질을 해.

뭘 좀 먹여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내 딸이 한 번도 엄마 빨리 와주세요를 한 적이 없다는 자각은

더욱 안쓰럽고 쪼매 서글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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