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생각난다. 쵸코렛!
왠 난데없는?
글쎄 그럴 일이 있다. 절대 잊어선 안되는..
"언제 오셔요?"
"예정이 자주 바뀌네요. 왜요?"
"송편 만들어 드리게요."
"송편요?"
"추석 때도 못 드셨잖아요"
아이구, 이런 황감할... 우짜꼬? 고마워서.. 냅두지 마셔요. 기대할께요. 잔뜩.
깔깔깔..
그러고서도 못가고 다시 또 한참.
그동안 그집 송편은 빚어진 모양대로 냉동실에서 땡땡 얼려졌더란다.
끄덕거리며 가방 끌고 도착하니
먼저 기다리는 메세지
"시간이 어떻게 되시나요?"
"에? 선약이... 좀 늦게 잡혀있긴해도..(에구!)"
"송편 드시고 나가서 만나도 될 시간이네요"
"아, 예.. (고맙고 미안하고..)"
애들에게 나눠줄 쵸코렛 네 상자.
엄마와, 다른 이웃들에게 줄 자그마한 선물 하나씩.
룰루랄라.
집에 가니 바깥양반이 아직 퇴근을 안했다.
1시간 남짓 거리에서 출발도 못했단다. 잔업이 안끝나서.
안되겠다. 우리끼리 먼저.
솔잎까지 정갈하게 깔아 찐 송편과 새로 담은 김치.. 다른 건 안봐도 우와! 맛있겠다.
행복할 지경인데
아닌 말로, 안주인도 직장 다니는 사람이면서
퇴근하고 와서 언제 준비한 상차림인지 다리 부러지게 생겼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엉터리로 주워들은 노래, 율동까지 곁들인 딸들의 재롱에
허리 접으며 깔깔거리고 호기롭게 나눠준 쵸코렛 상자.
척 까더니 대뜸 입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다가 도로 배앝아 낸다.
"앗? 잠깐만!! 그거 다시 가져와 봐 얼른"
쭈빗거리며 들고온 쵸코렛 상자에
블랜디 18%!!!!
뭣이라고?? 블랜디?? 하이고! 맙소사!
"빨간 상자도 줘봐"
위스키 22%!!!
내가 못산다 못살아. 읽어도 안보고 샀더라니 글쎄. 아이고!
독한 양주가 고물로 들어있고만!! 에고고!!
아이들아 미안해. 이건 엄마 아빠 것이구나
대신 다음에 꼭 사다줄께. 이딴만큼 큰 쵸코렛으로..
울상이 다 된 애들은 그래도 착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난감!
"두 개 사다줄까? 두 개?"
세살배기 작은 애가 찌푸렸던 얼굴을 살짝 펴면서 동시에 손가락도 쫘악 편다.
셋을 남기고 힘들게 나머지 둘을 접어넣는다.
"아하! 세 개!! 알았어, 언니도 세 개!! 이딴만큼 커다란 쵸코렛 세 개씩. 꼭 사올께!!"
비로소 표정을 활짝 펴고 그림 그리러 달려가는 애들 뒤에서 엄마들이 깔깔거린다.
내가 꼭 그런다.
덜떨어진 사람처럼.
자판기 커피를 뽑을 때도 고소한 <목장 우유커피> 빤히 보면서
진한 맛의 탕약같은<설탕 없는 블랙커피>를 누르고
렌지용인지 토스터용인지 들여다보지 않고 그라탕을 사와서 먹을 길이 없게도 한다.
샴푸 산다면서 린스만 잔뜩 들고들어오는 거야 다반사지뭐.
언제 꼬맹이들에게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날들이니
소포라도 부쳐야겠다. 쵸코렛. 이딴만큼 커다란 걸로 세개 씩.
그림책도 몇 권 묶어 보내야지.
애들과 약속은 늦어져선 안되는 걸.
번쩍 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