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무서운 기세로

튀어라 콩깍지 2006. 12. 17. 20:51

젖은 바람만 몸부림 하는데

이런 날 망년회.

하긴 뭐 이런 날이건 아닌 날이건 요즘은 주구장창 망년회이니 시비 꺼리도 못된다.

어제도 안가겠다 틀었더니, 오늘은 묻지도 않고 혼자 간다.

 

아는 얼굴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술자리에서 미친 듯 마셔대는 것도 아니고

덩실거림서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옆에 앉은 사람을 붙들고 시시콜콜 얘길 늘어놓는 것도 아니면서

꼬박 자리를 지켜야하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를 아는 사람은 알리.

 

어쩌다 보면 여러 사람들과 인사 나눈다며 다들 자리를 뜨고

배정된 원탁을 나 혼자 덜렁 지켜 앉았는 일도 흔하니 것 참. 어찌 깝깝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 무지 싫어하는 줄 알라.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익숙한 사람들과는 이틀 밤도 새운다뭐. 하면서 볼 메인 소리를 좀 내질러보고 싶지만

하여튼 시방은 그렇다. 벌 받는 아이처럼 엉거주춤 성가시럽다는 얘기.

 

술자리에 가므로 전철 역까지 옆지기를 실어다 준다.

나온 김에 마트도 들려야지.

케익용 박력분, 식빵용 강력분, 오코노미야끼 가루, 핫케익 가루, 스킴 밀크, 로얄밀크티...

주로 가루 종류를 골고루 산다.

카페오레 만들어 샤악! 뿌려마실 가루계피까지...

갓난애 주먹만한 고구마 다섯개 묶음 봉지도 하나.

 

냉장고에 정리해넣다가 문득

고구마 튀김이 먹고싶다.

바삭하게 갓 튀긴 고구마 튀김.

우짤꼬?

이 하고많은 가루 중에 튀김 가루가 빠졌구만 그래.

어째 꼭 없는 것만 먹으려드는지 성질도 꼭 뭣 같다...스스로를 탓하면서

에라, 굽자. 렌지에 지잉 돌린다.

 

뻐엉!

 

뭔소리???

 

고구마가 익다가 렌지 속에서 폭발했다.

웜메!

고구마도 폭탄이 되는고나.

낱낱이 가루가 되어 흩어져 붙은 고구마의 속살.

 

홀쪽해진 껍데기만 옆구리 찢어진 채 용용죽겠지를 한다.

따라서 신김치 얹어서 먹으려던 것도 푸시시... 알탕 없어진 껍데기로만 남고 만다.

 

바람 무섭고

발등 시리고

고구마 폭발한 렌지 속이 요지경이다.

 

망할 亡인지 망령들 妄인지 잊을 忘인지 들썩거리는 한 해의 꼬랑지를 디고 서서

나는 일감만 늘어난 바쁠 忙이다 꼼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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