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타러 가는 시간보다 10분 쯤 어슬렁 나갔던가봐.
선배 대신 가야하는 문화강좌가 내가 맡은 강좌보다 30분 늦은 시간이었거든.
역 계단을 향해 걷는데 딸랑딸랑 전철 하나가 휙 지나가더라.
어? 하나 놓쳤네... 다음 거 타지뭐.
느긋하게 플랫폼에 들어서니 이쪽 홈이건 저쪽 홈이건 사람이라곤 역무원도 없어.
시간이... 시간표를 확인하니.. 오모메! 40분 후에나 한 대 지나갈 거라는구만.
집 가까운 역은 간이역이어서 2,3분 간격으로 전차가 와주리라는 기대까진 할 수 없다해도
세상에! 이건 심하다! 너무 한다.
끄덕끄덕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역무원에게 다음 차가 너무 늦게 와요. 볼 부은 소리를 하고
표를 물렸지. 40분을 기다리고 있다간 수업에 늦어.
가까운 어디에서 점심까지 먹고 들어갈 양으로 내 딴엔 일찍 나왔더니만...
남북의 기점이 되는 다음 정거장까지 택시로 부앙! 날르고
표 끊어 올라가니. 것 봐. 바로바로 있잖아.
고쿠라에 도착하니 시간이 너무 헐렁헐렁.
터미널에 붙은 백화점 꼭대기층에 올라갔지
레스토랑街.
배는 고픈데 먹고싶은 게 없어. 어슬렁.
그냥 내려와서 반짝이는 머리핀을 골랐지. 시간도 넉넉한데뭐. 딸애 줘야지.
꽃가게도 어슬렁. 음반가게도 어슬렁.
아이쿠야! 지각하겠다. 헐레벌떡!
무심히 시계를 보니 바삐 걸어야 간당간당 들어갈 시간이잖아.
숨이 턱에 걸릴만큼 정신없이 걸어서 5분 전 입실 성공! 휘유!
한시간 반 연강.
한참 땐 일곱시간씩도 했는데뭐..
그런데 안쓰던 목이라 겨우 한시간 반에 켁! 잠기고 마는군. 켁! 켁!
끝나니 세시.
헤찰 좀 부리니 세시 반.
아침부터 줄창 배를 곯았더니 꼬로록 꼴꼴.. 배고파.
상점가에서 들어가보지 않은 카페를 찾아 올라갔지.
새로운 곳을 탐색해보는 거야.
오키나와식 음식을 만드는 곳이래.
죄다 처음 먹어보는 것들이니... 사진만 보고 가장 그럴싸한 걸로.
나온 건
옥수수 가루 밀전병을 바삭하게 튀겨서 절반으로 접고
실고추처럼 가늘게 자른 양배추 몇가닥과 소금으로만 간한 돼지고기 다진 알갱이, 새끼 손톱만큼 깍둑썰기한 토마토 몇 알.. 그리고 매운 고추기름 소스.
맛있겠다 쩝!
그런데
옥수수 밀전병은 너무 바삭거려서 살짝만 쥐어도 바스라지지요
전병 바스라지면 알갱이들이 우루루 흩어져 발부리에 널리지요
알갱이 흩어지면 손에 남은 건 옥수수콘 맛과 같은 그 뭐냐. 밀전명 껍데기만 달랑 남아설랑...
에구, 차라리 옥수수콘을 한봉지 털어먹는 게 훨씬 뽀땃할 지경.
허망하기가... 원...
커피만 진하게 한 잔 마시고 오며가며 읽던 책 마저 읽어치우고
여전히 꼬로록거리는 배를 하고 나왔지
곧장 오는 전철이 없어서 겨우 세 정거장을 세 번 갈아타느라 역마다 내려야 했어.
추워라.
속이라도 덥혀야지.
따뜻한 자판기 캔을 꺼내려는데 요넘의 동전이 또로록 굴러가더니 자판기 아래로 쏙!
자취가 안뵈.
에고데고!
동전이... 부족해.
동전을 도로 배앝아내게하고 지폐를 넣는데 딸랑딸랑! 전철 들어옵니다. 물러서세요. 딸랑딸랑...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지.
뒷쪽에서 거울 보면서 얼쩡거리던 초미니, 교복입은 여자애들이 대뜸 앞을 밀고 들어와.
화장 짙은 눈매들.
불량기가 철철 넘치더라니..
공중질서 하나는 기 막히게 잘지키는 게 일본사람들인데 이런 막무가내 애들도 있긴 있구나.
현관 문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실눈 뜨고 기다리는 우리 깜이.
손 등에 얼굴 부비며 에옹 에옹!
어디 갔다 왔니? 왜 나만 두고 나가니? 앙중앙중! 에옹에옹!
이럴 땐 단속 야부지게 잘해주는 우렁각시 하나 키웠으면...
아니, 우렁각시 말고 우렁서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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