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주절주절 (Ⅰ)
-情景 스케치
(1) 늪에 누운 가랑잎
--밤이 내리면 밤이 내리면 무수한 별들의 추억이 내리고
나 있던 그곳에 그대가 있고 그대 선 곳에 내일의 그림자가
지표 잃은 그늘에 울고 있으리 지표 잃은 그늘에 울고 있으리
삭풍이 지난 뒤 향수의 언덕에 사랑의 꽃이 피어나네--
고등학교 때 더러 불렀던 노래야. 가락 곱고 애잔하여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곡.
손바닥 크기의 문고본 악보집-『전석환 건전가요』에 실렸던 것이지. 내가 좋아하던 `찔레꽃'도 거기 있었다. 참.
이후로는 들을 기회도 부를 기회도 없이 까맣게 잊은 곡인데 어쩐 일이람? 종일토록 머리 속을 부숴진 레코더처럼 돌고 또 도는 건…
무심히 흥얼거린 곡이 계속하여 반복 재생되는 일이야 드물지 않지만, 제목도 생각나지 않으면서 가사만 고스란히 떠올라서 끈질기게 되풀이되다니… 흔한 일은 아닌데. 것 참.
`…지표 잃은 그늘에 울고 있으리∼, 삭풍이 지난 뒤 향수의 언덕에… 흥얼흥얼∼…!'
태풍 물러간 사위가 퍽이나 고적해. 문득 마른 바람이 와락 달겨들기도 하지. 잦아들었다싶다가도 파닥한 성깔은 아직 남아서 거칠거든. 것 봐. 방 귀퉁이에 세워둔 세 쪽 가리개가 갑작스런 바람에 자주 넘어지잖아. 털퍼덕! 엎어진 가리개 뒤로 사철 옷가지들 빼꼭히 걸린 옷걸이가 을씨년스럽군. 이크크! 또야! 어수선해지는 풍경. 에잇, 바람 잘 때까지 그냥 눕혀둬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벌써 창문을 꽁꽁 여며 닫았어.
흐름이 막힌 방은 역시 숨 막혀. `닫힘'이 곧 `갇힘'으로 이해되기 때문이겠지? 숨구멍이 강제 차단되기라도 한 듯 답.답.해.
내가 부러 숨을 참는 거라면 혹 모르지만 강제된 거라면 거부! 뭐 또 이런 강짜가 슬몃 옆구리를 찌르는 건 뭘까? 내력도 없고 대책도 없는 아집과 강짜만이 무력한 일상에 항거하는 보호갑주라도 된다고 여기는 건지… 이백 년 늙은 거북 껍닥처럼 더깨만 두터워져서는…
독방에서 침묵수행을 몇 달, 혹은 몇 년씩 해낸다는 스님들은 대체 어떻게 뿌리 없고 몸통도 없는 생각의 갈래를 묶어내나 몰라. 俗과 慾을 버리면 남은 가닥이 별로 없어서 정리도 별 일 아니게 될까? 그런데 俗과 慾이 질경이보다 질겨서 여간해서는 버릴 수 없다는 게 문젠가? 헛 참.
사방팔방 생각이 마구 튀는 중. 통.통… 정리는 커녕 더욱 헝크러져서 어지러워.
지금 막 선잠 깬 고양이가 게슴한 눈 뜨고 내 무릎을 딛었어. 요염한 몸을 곧게 뻗쳐서 내 뺨에 지 코를 부비는군. 아이구, 그래. 이쁘다 이뻐.
녀석에게 된통 물린 팔의 상처가 아직 푸른 독을 멍울로 품고 있는데도 안고 쓸고 이쁘다며 얼러대는 거야 지금.
보통 고양이와 달리 이 녀석은 꼬리가 짧지. 뭉툭한 꼬리를 휘휘 내젓는 품이 좀 웃겨. 뭐랄까. 마치 엉덩이 끝에 주먹 하나를 꽉 쥐어붙이고 방자한 세상을 향해 더 방자하게 종주먹을 을러대는 모양새거든.
그런데 저것 좀 봐. 꼿꼿하고 유연한 허리를 낭창거리며 걷는 폼. 근사하지?
저런! 저런! 추켜세우기 바쁘게 요염하고 고고한 자세를 허물어뜨리고 마는군. 악동같은 녀석! 박박박 문을 긁어. 이마로 들이밀어서 유리문을 열고… 이젠 방충망에 발톱을 박았지? 영낙없이 열고 말 거야. 잘 지켜봐. 녀석도 갇힌 건 질색이거든. 열리지 않으면 찢어서라도 나갈 터이니. 이쪽 방은 벌써 구멍 뚫었잖아. 야생의 기질이란 여타의 동물도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본성이니까.
고양이 하는 양을 보고 있으니 졸립다. 노래 들을래.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컴퓨터에 헤드폰을 꽂아. 이제부터 울리는 전화벨은 죄다 혼자 울다 말 거다.
전화 불통이라니. 멋지군. 바깥으로 뚫린, 또는 밖으로부터의 틈이 닫힌다는 건 모든 간섭의 종료!가 되니까.
미디어 플레이어를 화면에 불러내어 〈모든 음악듣기〉를 클릭했지. 입력된 음악은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데 물경 여덟 시간 사십팔 분 삼십이 초가 필요하다는구만. 친절한 컴퓨터씨의 알림 메시지가 모니터에서 깜박거려.
텀턱스럽기도 하지. 헤찰 쪼끔만 섞어도 하루가 꼬박 넘고 말겠잖아.
얄팍한 기계음은 헤드폰 속에서 살짝 두께를 만드는 듯도 싶지만 역시 한계가 깊어. 신경쇠약증 노인네의 해소 천식 증세랑 닮아있지. 바싹 밭은 소리. 끽끽거리면서 목덜미를 쭈빗 곤두서게 하는 헤비메탈의 음색. 그런데 그게 애당초 전위음악이라면 문제될 게 없을 텐데 클래식이 글쎄 감기 걸린 오리 목소리로 때악거린다는 게 내 머리를 팍 아프게 하지.
하긴 뭐, 오동통하게 살찐 음을 내어놓는 오디오도 놓아두고 꼭 신경질적인 컴퓨터로 음악을 견디는 건 내 선택이었지. 음악에 대한 무례와 무취, 무덤덤을 기기의 선택 따위로 증명받을 건 또 뭐람?
클래식, 뉴에이지, 샹송, 재즈, 가요, 팝.. 마구잡이로 뒤섞여 쏟아지는군.
삭풍이 지난 뒤 향수의 언덕에 사랑의 꽃이 필 뻔 하던, 저 애상의 곡은 온 데 간 데 없고 아다지오에서 프레스토까지 빠르기도 제멋대로 쿵쾅쿵쾅 어깃장을 딛는 음표들-평균율, 캐논, 토카타와 푸가… I belive I can fly…,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Feadra, 한계령이 내게 오지마라 내려가라… 바야흐로 난리 났어.
산들거리다가, 방방 뜨다가, 펄펄 날다가, 지리멸렬 바닥을 기다가, 오카리나 단음으로 마음을 저리게 하다가, 이젠 또 가슴팍을 밀면서 오지마라, 내려가라 야단이잖아.
뭐랄까. 마치 잡풀더미에 발목이 채여 넘어진 것 같다고나 할까? 그대로 엎어진 채 마냥 삭풍을 견디는 느낌. 벌레 몇 마리 꼬물꼬물 팔을 기어가는 느낌. 혹은 마른 풀잎에 사악! 베인 손가락이 아프다기보다 어쩐지 후련해지는 때와 같은 느낌. 그도 아니면 넘어져 깎인 무릎에 맺힌 실핏방울 같기도 하고… 딱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가뿐하고, 싸아하고, 아리면서 전율하는 느낌들의 복합체 속을 슬렁슬렁 유영하고 있어.
아무리 애써 설명해도 말이 길어지면 정작 본래의 느낌에서 멀어지고 말지? 오히려 애매해져서… 말이란 늘 그렇게 뒷통수를 치더라니까. 그러니까 뭔가 규정하려 애쓰는 게 애당초 부질없는 짓이야. 토란잎에 구르는 빗방울처럼 매끄러운 말이 외려 본질을 흐려놓고 호도하는데 톡톡한 몫을 담당하고 말 때가 더 잦더라는 얘기지.
혹하지 말 일이야. 현란함에 실눈 뜨지도 않을 일이지.
납작 엎드려서 그저 침묵하면서… 내 혼돈조차 남의 일인 듯 구경해봄직 하다니까.
혼돈이라…
원시적 카오스까지야 언감생심 비약할 바는 아니지만 근거가 아리송한 범벅 상태라면 누구라도 옆구리에 끼고 살고 있는, 하나의 현상 아닌가? 하도 당연해서 몸에 그냥 붙어버린 사소함 같은 거…
범벅이 꼭 나쁜 건 아니지. 혼돈이 정돈보다 사촌애처럼 편할 때가 많더라. 나는 그래.
어쨌거나 말을 아낄 일이야.
(2) 늪에 돋는 별
텃밭 넓은 앞집에서 사루는 모깃불. 그 아득한 풀쑥 내음이 뭉클거려.
쿨럭! 마른 기침이… 쿨럭! 매캐한 목구멍. 엄청나게 피워대는군. 불자동차 출동할라.
까악! 언제 들어도 심통난 스크루지 목소리인 까마귀 울음이 제법 가까워. 우리집 고양이, 깜이가 펄쩍 뛰어가는구만. 까마귀가 베란다 난간에 앉았거든. 아연 긴장! 깜이와 깜이만큼 새까만 깜장 까마귀의 노려봄을 나 또한 긴장으로 까매져서 쫑그려 보는 중.
푸덕! 깃 하나 날리고 까마귀가 날아갔어. 판정승! 게슴츠레 눈 내리깔며 깜이가 나를 돌아보다말고 거만하게 다시 드러누워. 짜식!.
오늘 새벽에도 창문 잡아열고 가출했다가 저녁참에야 돌아왔다니까. 나가긴 하는데 돌아올 땐 집을 못찾아. 일본 아파트 구조가 오죽 요상스러워야지.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혼네(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큼이나 개폐가 여의치 않은 보안성이랄까 뭐 그런 꽉막힘이지.
다테마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훈련 받다가 남에게 절대 마음을 열지 않는다도 덤으로 따라 익히게 된 건 아닐까? 내 눈엔 그렇게 보이더라.
어쨌든 저녁 참이면 쫑긋 밖으로 귀를 열고 “니야옹. 냐옹. 나 좀 찾아 데려가라. 나 여기 있다” 악쓰는 소리를 놓치지 않아야 해. 바깥 잠 재우지 않으려면 딱 그때 우루루 달려나가서 안고 들어와야 하거든.
괭이녀석이 바깥 잠 좀 자는 게 그렇게나 마음 쓰려서라기보다는 괭이녀석 들어올 때까지 맘을 태우고 찾으러 다닐 게 뻔한 아들 녀석 때문이지뭐.
깜이는 그 틈에 또 베란다 밖에서 날벌레 쫓느라 촐삭거리고 있어. 허허 참.
“까악” 다시 들리는 까마귀 울음. 이 동네엔 까마귀가 많더라. 아니 이동네만이 아니라 일본 땅엔 어디나 까마귀가 많아보여. 어려선 고향 마을에서도 자주 보이던 까마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느끼지 못하는 새에 자취 감춘 것들이 어디 까마귀 뿐일까만…
두고 온 것들이 그리울 땐 소금을 뿌리라던가? 후여, 후여….
소금 뿌린 지면에 풀 한포기 나지 않듯 잡다한 군생각들도 고사될 수 있을까?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땅이라… 지레 질리는구만.
지금 쯤 항구 주변은 바칸마쓰리(馬韓 축제)로 소란스럽겠다. 민단 부인회에서 일일 주점을 한다던데… 작년 요맘 때도 그랬어. 부인회원들이 땀 흘리며 부쳐주던 부추전 맛이 각별했지. 민단 건너편엔 조총련 부인회도 있더라. 양쪽에서 부치는 부침개 냄새가 이쪽저쪽 갈라진 경계도 없이 잘도 넘실거리더라니. 울긋불긋 색동 띠가 소리 없는 함성처럼 펄럭이던 풍경은 참 뽀땃했어.
나가봐야 하는데… 작정하고서도 왁자하게 밀리는 사람, 사람 떼가 싫어. 눈에 밟히고 소리에 채이는 게 싫어. 하면서 자꾸만 주질러 앉지. 젖은 머리칼 부성성하도록 빗질도 않고 건성건성 물방울만 털어내고 있어. 고장난 자동인형처럼 흔들흔들. 나갈까 말까. 흔들. 나갈까 말까. 흔들… 아직도 망설이는 중. 아마도 이대로 밤이 될 거야.
머리 굵어진 다음에 만난 사람들은 아무리 친절하고 싹싹해도 여간해서 건너지지 않는 간극이 늘 무겁더라. 풀어져도 좋을 헐거움은 아직도 신기루인가 몰라.
이를테면 나는 그냥 숨을 쉬고 싶다는 건데. 그래. 숨!
생성부터 내 숨구멍은 남들보다 까탈스럽게 만들어지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호흡기 용량이 별적스럽게도 큰 걸까? 숨 넘는 길목 어디쯤이 펑크라도 난 것만 같아. 자주 답답해.
관자놀이 뜨악하여 고개 돌리니 텔레비전 너머에서 맬깁슨이 삐딱한 눈을 흘기고 있어. 컴퓨터 오디오는 캐논 변주곡의 등성이를 애잔하게 넘는 중인데 아까부터 나는 줄창 갸우뚱. ‘저 영화 언제 봤더라? 어디서? 누구랑? 저 다음 전개가… 맞아. 그랬는데…
틀림없이 본 건 맞는데 기억은 캄캄하기만 해. 꽝이로군.
내 기억 창고의 고물 자물통은 아무데서나 턱 턱 잠기고 막히지.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엉거주춤 당황할 때가 흔하디 흔해. 일부러 서점 나가서 골라 사온 책도 읽다보면 `뭐야? 전에 읽은 거잖아.' 낭패스러울 때 많다니까 글쎄.
옹색함을 무릅쓰고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려나?
표지, 제목, 저자… 이런 건 처음 고를 때 얘기고 그 다음엔 안보거든. 여러 권을 한꺼번에 디립다 읽어내리는 버릇도 한몫 할 거야. 내쳐 읽다보면 표지, 제목, 저자, 일러스트, 레이아웃… 죄다 섞이고 말지. 특히 단편소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어.
그런가하면 의외로 신통방통한 구석도 있긴 있어. 묵은 친구들의 생일이라거나 가족들의 주민등록번호 따위는 언제라도 또르르 꿰는걸뭐.
얼추 저녁이 되었지? 이젠 늦었다. 나가긴 틀렸다.
흔들리던 마음의 또아리를 마저 풀고 엉치만 들면 금새 날아갈 듯 긴장하여 앉았던 다리도 주욱 펴고는 고쳐 앉았지.
모깃불 연기와 전석환 노래, 부인회 천막, 부추전 냄새, 아랫집 제초기 소리, 달려다니는 깜이, 맬깁슨, 바흐, 쇼팽, 체리필터, 양희은, 비틀즈 그리고 까마귀, 저기 저 화르르 불꽃 토하는 노을… 아, 오늘도 몹시 분주하고 수선스러운 날이었구나. 소금 뿌리지 않고 용케 건너왔구나. 부식을 겁내지도 않고 씩씩했구나.
이러면서 빨래를 걷고 개키듯이 잠시 들썩거리던 마음을 갈무리하고 말아.
어라? 그런데 이 무슨 달콤한 냄새?
우짜꼬? 가스렌지 위에서 핫케익 모양을 한 숯검댕이가 시커멓게…헛! 험!
이미 핫케익이라 말 할 수 없지만 냄새만으로는 여전히 달콤한 숯검댕이가 덩그랗게 쪼그라들고 있는 중.
좀 전에 아들녀석 간식거리 준다면서 가스불에 올렸으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 쯧쯧'
그럴 줄 알았더면 그러지 않도록 막을 일이지, 그렇게 되도록 버려두었으면서 혀는 왜 또 끌끌거리누?
무릇 스스로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워야 할 것을, 내 부실함에만 관대해지는 처사가 문득 부끄러운가 몰라.
소리 없는 소음, 형상 없으면서 또 있는 것들의 섞여듬.
흔들리는 혼돈으로 홀로 분주하면서 한편 고요한 저녁을 지나 비로소 낮아지는 물상. 밤도 깊고 개짖는 소리 선명해지면 부산으로 떠나는 부관훼리 뱃고동도 길게 울리겠지.
비설거지 끝난 마당처럼 말갛게 높은 밤하늘에 또롱한 빛이 반짝! 아. 별이 돋는구나.
마음의 묵정밭. 밟아도 밟아도 꼬불꼬불 고샅길 한 줄 생기지 않지만 그 무성한 잡풀 더미에 기꺼이 주저앉아 풀물 드는 꿈이라도 꾸었으면 좋겠어.
낮아지고
얼마든지 깊어지면서
실컷 그리워하다가 거침없이 부식해도 좋을 그런,
고요의 평정에 발바닥이 닿았으면…
추신. 오락가락 갈피 없는 여러 갈래의 생각을 따라가다 밤이 되도록 바깥으로부터의 통로, 즉, 밖으로부터의 간섭. 전화는 단 한통도 걸려오지 않았음. 핸드폰도 내내 먹통이었음.
-2006. 8. 그 하루 무덥던 밤
<별, 글숲에 모이다2>에 수록/2006. 11. 5 발행
-도서출판(시와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