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침묵의 해협

튀어라 콩깍지 2005. 7. 17. 00:43

 

<1>

울었다. 결국.

옆자리 여고생들도 날아갈 듯 경쾌히 종달거리더니만 어느틈엔가 홀짝거린다

왼쪽에 앉은 할머니는 미동도 없지만 문득 뺨을 쓸어내리는 손길.. 눈물 닦는 거겠지

 

<2>

<침묵의 해협>

한일공동극 제목이다

恨스런 현해탄을 말함이지.

 

상연 전에 약식 심포지엄-연극 연출가와 차범석님, 한국극단협회회장, 여기 시장, 한일관계 연구 학자가

줄줄줄 그냥 편히 앉아서 가벼운 담소를 나누 듯 슬쩍슬쩍 건드리는 역사,.. 뒤안길의 까십거리들...

무대 윗쪽 높게 자막에는 한국어를 통역하는 일본어가 숨가쁘게 지나간다 

옆자리 여고생들이 열심히 베끼고 있는 한글.

건너다보니 삐침까지 그대로 그리느라고 정작 글씨는 전서체가 되어있다

틀린 곳을 고쳐주니 자기 이름도 한글로 써달란다.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

그 옆으로 줄줄이 앉은 친구들도 덩달아 부탁하고는 또박또박 써 준 한글 이름을 받아들고는

금방 까무러치기 직전들이다.

여고생 특유의 생생함이 천진하다.

 

시작은

검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간호원의 나레이션

일본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의 사진이 배경 화면에 가득 채워지고

그의 이름은 둘이라는 것-카네다 도신

또하나의 이름은...

 

고통스러워하는 무명옷의 조선여자들과 일본군의 빠르고 암울한 고통의 춤이 격렬하게 얽히다

이윽고 정신병동 

60여년을 기억을 잃은 채 동경 정신병동에 수감된 환자.

어떤 것에 대한 반응도 말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백치가 되어버린 남자를

한신대지진 때 불속에서 자기를 구해내고 다친 허리로 한달 뒤 죽게된 한국인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그 남자의 간호를 자청하는 간호원으로부터 시작되는 얘기.

 

사이사이 버물려지는 일본의 한국 침략 역사.

나라 잃은 약소민족의 기댈 곳 없는 정체성.

일본 유학 중 강제 징집을 피해 돌아온 주인공과 궁중악단이었다가 일제에 의해 손을 잘리고 돌아버린 주인공의 아버지.

그 아버지와 집안을 지키기 위해 동생을 헌병대에 밀고한 장애인 형.

그렇게 잡혀가서 만난 기생. 본명을 쓰는 한국 여자

그 여자의 집안도 일제에 의해 유린당한 뒤 군수품 공장에서 일한다는 꾀임에 빠져 관부연락선을 탔다가 기생이 된 조선 여자.

 

안동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기억으로 조선인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그러나 매우 군국주의 신념에 찬 카네다의 선배.

 

극의 흐름은 빠르고

비교적 양심적이라는 일본 지식인들이 흔히 말하는 조선 문화 개화에 일조한 일본의 역할을 설파하는, 있을 수 있는 주장들

음지와 양지의 서로 다른 입장을 토로하며 울분을 참지 못하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의 창씨개명을 준엄히 나무라는 기생.

 

얼마쯤은 신파적이지만 그 조차도 적절했다는 생각

기생 박현희 역을 맡은 여배우의 노래부르는 소리가 어찌나 곱고 어찌나 맑고 어찌나 이쁜지...

춤사위도 고왔다.

 

인육을 먹으며, 죽어가는 고향 동료를 두고 올 수 없어 차라리 자기 손으로 목숨을 거두고

천우신조로 살아돌아온 주인공

기생은 간호보조원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

비슷한 시기에 히로시마로 가게된 여자와 남자는 만날 약속을 하고 함께 걸어 갈 미래의 꿈에 행복해하는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여자는 죽고

남자는 자기라는 존재 자체를 상실하고 전쟁이 끝났는 지, 본래 조선인인 지, 의식하지 못한 채로

60여년을 정신병동에 갇힌 채 보낸다

 

어느날 간호원의 가야금.

그 간호원의 배려로 드디어 방문하게 된 히로시마.

아버지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여자를 기억하고, 사물에 반응하면서

남자는 일시에 잃었던 과거를 회복한다.

그리고 죽는다.

카네다 도신이 아닌 김 동진으로.

 

가슴이... 답답... 체증같은, 또는 멀미같은... 어쩌면 울화증 같은...

 

<3>

그렇지만 이건 화해다

텅빈 공연장의 빈 의자만큼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먼 마음들..

독도,..오늘도 공연장에선 관계자들이 죽도라 불렀다... 교과서...

 

매일같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문제 삼는 테레비 속 정치인, 방송인, 우익 인사들에겐

까마득 먼, 어쩌면 있을 수 없는 화해.

몇사람의 일본인 납치에 보이는 관심과 우려와 분개가

자기네 일본인들이 저지른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다수의 일본인들.

 

무턱댄 비난은 현명하지 못하다

무작정의 친근감도 억지스럽다

끝없이 반목할 순 없는 게다

감정에 기대어 적당히 물러주고 적당히 잊어주고 어물쩡으로는

끝없이 토시락거릴 수밖에 없다.

서로 긁고 상하기를 대물림으로 넘겨주면서...

 

<4>

눈물 찍어내는 한숨이 여기저기..

절반의 관객은 민단에서 왔을 게고

절반의 또 절반은 동원된 고등학생 아이들이었지만

애들이어서 다행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역사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절실히

가슴으로 느끼고 단숨에 알기를.

홀짝거리는 여고생들.. 그들의 넋이 끝내 맑기를...

 

<5>

언젠가 한 번 뵌 적이 있는 차범석선생님께 인사드리고(물론 기억 못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녀석에게 감상을 묻는다

"그냥... 뭐랄까... 머리 속이 복잡해요"

 

그럴테지. 그래야 하지.

아들놈. 드디어 한국인이 되어간다. 복잡함을 한참 더 오래 통과하고 명료해져야 할 것.

그 끝에, 달라져야할 모습들 많은 우리라해도 그것까지 통찰하는, 그래서 나아가는 한국인을 이루도록!! 

 

아들,

똑바로 서라!!!!

 

<6>

사람을 용서하고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사람으로서 얼마나 어려운 지...

가슴에서 통증이 밀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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