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엿(깜이+뽀미+항아)

뺨에 손톱자국

튀어라 콩깍지 2005. 12. 19. 12:11

(1)

 

데려다 주겠다 설칠까봐 평일에 들어간다고 미리 선수를 쳤더니만

나보다 한 수 높은 후배 부부 왈 ;

나란히 연가를 내고 따라나선단다...헉! 이 무작시런 위인들!!

고향 집에서 부산까지면 무슨 이웃집 나서듯이 나설 거리도 아닌데

다녀갈 때면 꼭 태워다주겠다 설쳐대는 게

내게는, 해결 안한 빚처럼 오목가슴 얹히고 미안할 일이다.

 

전 날

연일 꾸무럭거리는 하늘이 원없이 배앝아내는 눈바람이 심상찮다.

길은 아주 미끄러운 정도를 넘어서 반질반질 얼음판이고..

바래다준다 싫다로 실갱이를 벌이고 자시고 할 일도 없어보일만큼 험한 낯빛의 하늘.

 

아침이 그래도 조금 뺀해서 일찍 나선 길.

행여 아침 식사 걸를까봐 애들 편에 일찌감치 들려보낸 김밥 한줄, 호박떡 한덩이도 미쳐 못먹고

가방 한켠에 밀어넣었더니

차에 올라앉자마자 눈앞에 펼쳐놓는 김밥, 커피, 간식거리들..

"아이구, 이 못말릴 여자야. 어지간히 좀 설쳐"

칭찬은 커녕 타박부터 놓고

바리바리 가져 온 배추김치, 갓김치, 무김치, 미숫가루, 유자차, 매실즙, 떡국, 청국장가루, 말린 누룽지, 참기름... 내가 잘 듣는 곡들 추려서 제자애가 구웠다는 CD까지 물경 일곱 장...

건강식품 만물상 같은 봉지들 챙겨넣고 박스를 꾸리니

아이고메! 허리 부러지겠네. 들지도 못할만큼 무겁다.

"엔간히 갖다 날려라고 미리 일렀어? 안일렀어?

 이렇게 무겁게 들고다니는 거 싫다니까... 투덜쭝얼 고시랑..."

소리만 바가지로 뒤집어쓰고도 생글거리는 후배 부부랑 부산 국제 터미널.

 

돌아갈 길이 걱정스러워서 빨리 가라고 떠밀어보냈더니

혼자 띵게놓고 가기가 속이 짠하네 어쩌네.. 줄줄이 문자 풍년이다.

안그래도 보내놓고는 나도 속이 찌잉~!해지는 판인데...

 

(2)

 

배정된 선실에 가방 끌고 들어서니 오모메!

웬 남정네들 얼굴!!

가운데 위쪽이 뚫린 방의 저쪽 칸엔 남자들 이쪽 칸엔 여자들이 들앉았다

가방 밀어넣자 로비로 나와서 얼쩡. 테레비 앞에서 애없이 시간만 잡고있다가

채널 놓고 다투는 아줌마와 아저씨 싸움을 피해서 들어 온 시간이 아마 12시를 넘겼지 싶다.

 

간질거리던 목이 기어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연신 캘록캘록!!

늙은이 해소 기침 소리를 내쌓고.. 풍랑주의보라는 말을 실감나게하는 흔들림으로 속도 울렁!

머리도 지끈!

골고루 편치않다.

 

한국인들의 일본여행비자를 영구히 면제한다는 뉴스에 이어서

일본군들에 의한 난징 대학살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방송

누군가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이 보고있는 방 안의 테레비 소리를 이어서 듣다가

얼핏 잠들었나 했더니

토닥토닥...

조심스럽지만 반복되는 잡음.

일어나니 선실 불빛이 죄다 켜져있고

초저녁에 잠들었던 여자 승객이 초 새벽부터 화장하느라 화장통 열고 닫는 소리.....하~~품!!

 

 

(3)

 

그 새에 엄청 까탈스러워졌는지 입국 심사도 하안참 지연되고

뭘 기록하라는 새로운 주문도 늘고

이 분은 공무 때문에 일찍 나가셔야하는 분이라면서 뒷쪽 줄에 있던 승객을 대뜸 먼저 내보내기도 하는,

다소 이해 못할 상황에서 하마터면 일본 아닌 줄 착각할 뻔.

 

문제의 건강 식품 박스(?)를 수하물 거치장에서 찾아들고 나오니

뜯어본다는 세관원.

"괜찮습니다. 열어보세요" 박스를 맡기면서 예전에 없던 일이라 어쩐지 으시시한 기분.

 

부욱 뜯긴 박스 속에 참 소박한 먹거리들..ㅎㅎㅎ

다시 포장하고 실어주면서 미안해하는 친절까지 잊지않았지만

그래도 숱하게 드나들던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의아하기도 하고

내 인상이 그 동안 험악해졌나? 유리문에 비춰보고 싶어지는 충동.  ㅋㅋ

 

택시 승강장까지 끌고오면서 이미 파김치처럼 늘어진 어깨. 에고고 힘들어.

뒷 택시 운전수가 잽싸게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내가 탈 앞 차 트렁크에 그 무거운 짐을 번쩍 실어주는 거 보면서

새삼 감탄.

자기 차를 타는 것도 아닌데...

에스컬레이터에서 비뚤어진 포터를 지탱하느라 이미 내 허리짝 등짝은 삐그덕해버려서 

택시 안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식은 땀 날 지경인데

내려서 다시 포터에 올리고 경사길을 끌고 갈 땐 하마터면 으앙!! 울 뻔!

 

 

(4)

 

"깜이야"

하여간 어떻게 어떻게 아파트 문을 따고 문 밖에 짐은 세워둔 채 깜이부터 부르고 들어오니

이녀석이 어딜갔는지 뵈질않고.

안방 문 여니 거기 널부러진 아들놈.

"워메! 뭔일이래? 어디 아파?"

우루루 달겨드니 속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허애진 얼굴은 조막탱이만 하고...

아주 몸뚱이로 엄마의 부재에 시위하는 중.

"아따메, 짜잔한 자석. 쫌 야물지 못하고..." 

무안을 타박으로 감추는 버릇.

 

내 아들 옆구리에서 세월아네월아 늘어져있던 깜이가 톡 튀어나오는데

털빛깔부터 윤기가 자르르 몸집 실팍한 것이

아무래도 그동안 잘 먹고 잘 산 녀석은 깜이 하나인 모양.

 

아픈 등짝으로 간신히 주저앉아서 끙끙거리는 내 얼굴 빤히 올려다보더니만

순식간에 뺨따구로 뛰어올라서 부욱! 손톱자국부터 내놓는 고얀뇬!!

 

어깨로 무릎으로 벌벌벌 올라서는 힘이 삼 주 전과는 여영 딴 판인 게

튼실해서 좋긴하지만

벌써 여기저기 발톱에 걸려 올이 삐져나오는 내 외출복 쉐타(??)

환영인사 한 번 야물딱지게 받는구만.

 

학원 선생님 편지 읽고, 매실차 한 잔 진하게 끓여마시고, 통닭 데워서 몇 쪽 순식간에 해치운 아들놈. 쌩썡해져서 학교 가고

깜이뇬, 내 등짝을 몇 번 더 할퀴다가 뺨에 손톱자국 한 점 더 남기고

풀어둔 가방 사이를 바삐 뛰다가

내 손에 걸려서 하기 싫어하는 세수 당하고나더니 도로 얌전, 내숭.

눈 껌벅이다가 주욱 늘어져서 낮잠에 들고.

 

풀어헤친 짐들로 늘어진 방에서 아이고! 허리야! 등짝아! 낑낑거리면서

나는 온라인 친구들 방을 휘잉~~! 돌고온다.

 

등 좀 펴고 청소도 하고 실실 또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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