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튀어라 콩깍지 2005. 12. 26. 01:07

(1)

 

지 사는 주제도 빤한 데

뭘 그렇게 나눠주려 애쓰는 지

신통방통하다

 

그게 마냥 신기해서

빤히 들여다보다가

친구가 되었다

-- 단발머리 중학생이었던 때 얘기

 

    유복자 내 친구는

    산 밑에 납작 엎드린 집에서

    삯바느질하시는 어머니와 한살 터울 언니랑 살았다

    어머니도 갈래머리 여고생이 되던 해에 가시고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나 모른다. 뭘 먹고 살았는지...

    그 애

    내 생일 때 자기가 받은 장학생 뺏지 하나

    편지봉투에 넣어서 내 생일 선물로 보내주었다

    뭉클!

   

 

(2)

 

또 내가 아는 어떤 여자 하나

지 사는 주제도 그렇고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모 인사의 딱한 사정을 알고

은행빚 내서 부쳤다

주면서도 매우매우 부끄러워하고, 난감해 하고...

받는 사람은 절대 받지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주는 마음이 하도 간절해서 그 간절함을,

받는 사람에게 뒤에서 슬쩍 전했다. 내가.

냅다 손사레를 치던 사람이 그 뜻 전해 듣고는 손사레 접고서 감사히 받았다

그 여자

매양 그 꼴이어서

빤히 바라보다가

친구가 되었다.

받은 사람과도 친구가 되었다. 셋 다 서로 감사하면서..

나는 그냥 구경꾼이었을 뿐.

-- 여기 들어오기 전 얘기.

 

    감사한 건

    내 주변의 어떤 여자와 남자들.

    다들

    지들 사는 꼬라지들이 그렇게 빤해도

    없는 주머니 털어 나눌 줄 아는 사람들.

    마음 동하면 은행빚이라도 디립다 낼 줄 아는 대책없는 인사들.

 

쉽지 않다는 거 안다. 불쑥 주겠다고 덤비는 일.

그보다 더 쉽지 않은 게 받는 일일 게다

받는 데 서툰...

 

하긴 받는 데 익숙하다 못해서

빼앗아가지 못해 발버둥하는 위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요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주지 못해 안달하고

받는 데 서툴어서 또 안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있어서

시절이 빛나는 게다...

 

 

(3)

 

내게는 이모님이 두분 계신다

본인들도 어렵게 공부하셨다.

후일담으로 다른 친척들에게서 전해듣기로는...

매달 일정액을 정하여, 소리 안나게, 다른 사람을 돕는다. 지금도.

애들 학업 마치니

작은 이모님이 다시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목사님이 되셨다고 어느 날 TV에 나오시더란다.

 

두 분 이모님이 어린 내게 늘상 하시던 말씀

 "이미 갖고있는 물건이 다시 내 손에 들려지면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것이다

  내 주변에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찾아 전하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게다"라던...

 

아주 야무지고 재주많고 똑똑한 두 분 이모님

화장기 없이 수수한 모습과 반듯한 장신구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털털뱅이들이지만

가득하고 넉넉한 삶의 모습이

내겐 늘상 등불이었다

 

사람의 내용을 채운다는 건 아마 저런 모습인가보다 싶은...

 

 

(4)

 

블로그로 알게된 몇 분께

아주 사소한 선물을 드린 적 있다. 내게도.

그냥 마음 씌이면 대뜸 주소를 물어서..

아는 여자나 남자들처럼 은행빚을 내거나

이모님들처럼 월정액을 정해서 큰 몫을 뚝뚝 떼어드리지 못하지만

자잘하고 소소한 선물이나마

불쑥불쑥 보내고 싶은 게다.

정말 보잘 것 없는..

그런데도

준비하고 보내는 마음은 흥그럽다.

보상이나 답을 바라지 않지만

마음의 즐거움이 이미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

 

그런데 갑자기

어떤 분이 내 주소를 물으신다.

보내시겠다는 건 연하장.

직접 만드신...

 

깜짝!

당황!

 

역시 받을 준비는 당당 멀었다.

더도 덜도 수식이 붙지않은 마음의 나눔.

그게 더디고 서툴어서... 

 

그래도 용기를 내어 주소를 올려드렸다.

한해의 시작이

이미 받은 거나 다름없는, 한 장의 연하장으로 인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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