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씨(일상)

혼자 놀기=살아내기

튀어라 콩깍지 2006. 1. 7. 23:13

(1)

 

남편의 퇴근 시간은 언제나 10시 이후.

10시 반이나 11시 넘어 저녁 먹는 사태도 빈번하고...

그도 그럴 것이

퇴근 후 모여드는 어른들에게 한국어니, 문화 등등의 강의가 있기 때문이지뭐.

것도 여기서 한시간 반 씩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나누어 가르치다보면

저녁 챙겨먹을 시간도 없이 그 시간 아니고 별 수 있남??.

 

꾀를 좀 부리면 하루 정도 빈 날을 남길 수도 있을텐데

한 지역도 건너뛰지 않으려 욕심 부리니 매양 그 모양인 걸.

 

하긴,

더러 삐뚤빼뚤 글씨로

틀린 철자 한 두 마디씩 섞인 한글을 써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는 교포 할배 할매나 일본 할배 할매 또는 학생들 보면

손 빠지는 지역엔 남편 대신 나라도 달려가고 싶어지긴 해

 

그래도 그렇지.

아는 이, 친구 한 명 없는 타국에서

하루 종일, 방학도 없이 365일

한밤중에 저녁을 차리고

숟가락 빼면 노트북 열고 밀린 공문 처리하다가 꼬부라져 자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과

일주일에 사흘 운동, 사흘 학원 가는 아들놈 집에 오는 시간도 10시, 11시를 셈하는 집에서

싫거나 좋거나 혼자 놀 수 밖에 없는 엄마나 아내란

어휴! (젠장!!.. 이 대목에선 이런 말. 절로 튀어나와)

가끔

'뭐하러 이런 곳에 살러 들어왔나??' 싶을 때가 있다니까.

나도 신바람나게 잘 살았었는데... 싶은...

 

(2)

 

들어와서 1년이 다되어가는 오늘

처음으로 볼링장에 갔지.

 

마루바닥으로 된 화장실을

손 걷어부치고 빡빡 문질러 닦고

세면대 칼칼이 닦고나도 점심참이야.

긴 긴 하루가 고무줄 총처럼 주욱 늘어나서 끝도 없어 보이고...

요새 우리집 남자. 내 일상에 쪼매 신경을 쓰잖아.

 

볼링장 가자더구만.

갔지.

고작 두 게임했는데 어깨가 뻐근해.

워낙 오래 전에 하던 짓들이라서...

혼자서 한 레일 차지하면 스무 게임 씩 던져대던,

그 무작스럽던 시절에 비할 수야 없지뭐.

뭔 볼링 따위가 운동 된다냐?? 실눈 뜨던 사람들.

천만에!!

혼자 스무 게임 줄창 던져 봐. 땀으로 멱을 감고 말지 왜.

오늘 에버리지 116.-- 헤헤. 처참하군.

어쨋든 길 텄으니 이젠, 혼자서 놀러 다닐 참.

스트래칭이 좍좍 되더구만.

 

(3)

 

돌아오는 길에

아주 놀러 나왔으니 완벽하게 놀아줘. 노래방 가자. 꼬드겼지.

나보다 더 노래 좋아하는 남편이 마다할 리 없지.

실은 노래방도 여기 들어온 이래 처음이었어.

 

"한국 노래 많은 방으로 주세요"

별로 많지 않았어.

그래도 아쉬운 사람은 난데 어째. 한국어 노래가 있다는 것만도 감지덕지지.

 

직장 그만두고

한 오년 씩 물 건너 오가기를 세 번 째.

문화실조 현상이 심각해져서

노래를 모르겠더라구.

탤런트, 배우, 가수도 물론 범벅이지.

통 몰라.

예전엔 누구든 새 노래 배우려면 나더러 가르쳐달랬는데...

배우려 하지 않아도 어느 틈엔지 귀에 들어와 있어서 신곡도 곧장 불러대던 건

완전 옛이야기고

듣는 곡이 죄다 신곡이니 맨날 맥 빠지는 구닥다리나 부르고 있을밖에..

 

(4)

 

오늘

작정한 건 아니지만

어쨌건 길을 텄어.

엄청 엄청 커다란 공간들.

나 하나 섞여들어도 아무도 신경 안쓸만큼.

혼자 놀 궁리.

즉 혼자 살아날 궁리를 구체적으로 한 날이었지.

 

그림도, 볼링도, 노래도, 여행도 혼자서...

깐닥거리고 잘 놀면서 잘 살아내야지. ㅎㅎ

 

실인즉슨

한 번도 한가할 때가 없었어. 나도.

한가라니...

가끔은 한 열흘만 까무러쳤다가 깨어나고 싶던 피곤함으로

매일이 물속을 헤엄치듯 허부적이곤 했지왜.

과로사하고 말 것 같던...

 

내 아버지가 그러셨거든.

어찌나 어찌나 부지런하셨던지, 통 쉴 줄을 모르시더니만...

 

그런데 나도 꼼짝없이 내 아버지 딸이지.

노는 게 익숙치 않아서 오히려 사방팔방이 덜그럭!!

허둥지둥!

안절부절!

전혀 느긋해지질 못하고 그게 그렇더라구...

 

병인가? 유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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