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회 후에
방을 옮겨서
재일 2세 오덕수 감독의 다큐영화 <在日>을 본다
광복 이후 일본에 남게된 한국인들의 고단한 삶들.
일본 정부가 어떻게 교묘히 한국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부당한 대접을 해왔는지,
재일 한국인들이 어떻게 항거하고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 노력해왔는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면서 사고 기제는 일본화되었는데
결코 일본인 안에 흡수되지 못하고 이유도 모르는 부당한 대우로
2세 3세 또는 4세들이 어떻게 자의식의 혼란을 겪어야했는지,
얼마나 핏줄을 버리고 싶어했는지
그러다 뒤늦게 자각한 조국과 민족의 정체성을 그들이 또 얼마나 자부심으로 대하게 되었는지,
무엇보다 본국 정부와 국민들이 해외 동포에 무관심했는지를...
또 있다
광복과 6.25와 이후 상황들에 미국과 소련이 무슨 짓을 했는지.
미국에 항복한 후 일본 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미국과 협의한 외국인 평등 대우 조항을 일본 정부가 삭제하고 오히려 불평등 외국인 등록법을 공표했는지..
민족학교에 대한 핍박과 그걸 지키려는 재일한국인의 피눈물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 지문 날인을 거부하는 동포와
어느 틈엔지 그 내용을 국가대 국가의 정치문제로 만들어
일본 수상과 전두환씨가 한 번만 날인하기로 조인한 사실을 접하고
허탈하고 어이없어하는 당사자들의 표정들...
한국은 일본에 의해서 해방되었으며
한국인들은 거의가 공산주의자이고 범죄자들이 많아서
한국을 조인 공인국으로 인정하여 대우할 수 없다는,
광복 후 일본 수상의 발언이
미국과의 회의록에서 하얗게 삭제된 부분들을
미국까지 가서 찾아내 삭제 내용을 밝힌 오감독의 끈질긴 추적.
홋카이도의 혹한 속에서 끌려와 일하면서
참혹한 시절을 보내다 아직 젊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빈곤.
부락이라 일컫는 한국인 마을의 참담함.
능력 있어도 채용되지못하는 차별... 따위...
총련과 민단의 갈등구조
차별과 빈곤을 힘겨워하다가 지상낙원이라는 북한 꾀임에 빠져 북송선을 탔다가
이후 가족과의 만남도 끊긴채 여전히 힘들고 차별받는 생활을 한다는
소문만의 북송 교포들... 등등..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
그래 그래 한숨 섞인 동조의 한탄들...
뼈아픈 가슴의 통증이리라.
<화씨 9.11>도
재미 삼아 본다면 절반의 절반도 못보고 잠들고 말 일이었지만
재미를 따지라면 <재일>도 전혀 재미없는.. 그러나 눈을 뗄 수 없는, 감히 졸 수 없는...
숨 죽인 두시간 15분 후
오덕수 감독이 부끄러워하면서 나와서
거기 취재한 몇 사람의 근황..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동포 변호사와
촬영 이후 달라진 상황 몇 가지 소개하면서
재일한국인들에게 광복은 광복이 아니었다는,
여전한 식민의 시대였다는,
마늘 냄새, 범죄자 소굴 등으로 취급 받던 게
요즘 와서는 대체 무엇이었던가?? 생각하게 된다는,
요즘의 한류 열풍, 인천 공항에 대형으로 걸린 배용준의 초상을 보면서
달라진 일본인들의 한국인 대하기를 접하면서
여태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들이, 대항해 온 것들이 대체 무엇이었던가를
반문하게 한다는 말로 끝났다
<재일>비디오 두장을
만 팔천 엔에 사오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
오히려 소중하고 귀한 자료를 안고 온다는 생각.
내내 뭉클한...
버려진 사람들의 자활을 위한 발자취라면 심한 표현일까??
정치가 망쳐놓은 양국 관계.
문화를 통해서라도 이만큼 재일한국인들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은
그나마 천만 다행인 일.
분노로만 적대시하는 거야 한국내에서 벗어나 살 필요없는 국민들의 맘일지는 몰라도
그럴수록 그 구정물을 뒤집어 써야하는 재일한국인들이 볼모처럼 잡혀있다는 것.
잊어서는 안될 일.
'콩기름(수선 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흣! (0) | 2006.01.11 |
---|---|
운세 사나운 날 (0) | 2006.01.10 |
또 튀었다...대략 난감!! (0) | 2006.01.09 |
언젠가 패스트 푸드 점에서 (0) | 2006.01.08 |
양념통 하나 (0) | 2006.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