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왕재수 아줌마... 아이고!!

튀어라 콩깍지 2006. 2. 3. 23:02

(1)

 

새벽길 나서긴 했는데

전철 역에서 그만 승강장을 섞어놓는 바람에

타야할 차가 건너편에 섰다가 떠나는 걸 어이없이 바라보고는

택시로 쫒아간 다음 정거장에서 또

바꿔탈 전철의 꼬랑지만 본..

허탈하고 조바심 난 오사카로의 출발 일.

 

하여간에 우왕좌왕 설레발을 친 끝에

오사카항에 도착은 했는데

워모메!!! 워쩐디야?? 훼리 터미널이 따로 또 있네

배가 도착한다는 시간은 이미 되었고

입국 수속하고 들어오면 모두들 행선지로 떠나고 말텐데..

발 동동동 쫒아간 훼리 터미널.

국제 훼리 터미널은 또 따로 있다는구만 글쎄.

조바심을 넘어서 허탈!!

돌겠군!!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다시 뒤돌아 국제훼리터미널로 달려와

우산도 없이 빗속을 뛰어 택시 잡아타고 가면서

속으로는

암만해도 틀렸다. 교토 호텔로나 따라가면 밤에나 일행에 합류할 지 모르겠다. 싶은 체념과 낙담.

 

한 정거장 앞에서 만난 딸 얼굴도 찬찬히 딜다보지 못하고

허겁지겁 국제항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 시간에서 이미 한시간을 훌쩍 넘었는데

내가 탄 택시 앞 유리창 앞으로 지나가는 지인의 얼굴!!

"끼얏호!!"

멀어지기 전에 잡으려고 뛰어내리느라 택시비는 물론,

옆에 앉은 딸애도 내버리고(??)

마구 내달려가버린 비정의 어매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버스에 오른 것만 기뻐서 제 정신이 아닌,

그 째지는 기분!! 환상! 환상!! 

얏! 호! 호!

 

택시비 계산하고 따라온 딸애의 어이없어하는 표정도 일갈하고

친구들 찾아내서 딸애를 인사시키자마자 '어여 집에 잘가라. 낼 너네 학교 시험이랬지?' 

냅다 돌려보내자마자 곧장 버스 출발!!!

 

(2)

 

종일 좋은 기분으로

엄청 유식, 박식, 해박한 가이드의 

백제사와 얽힌 일본사 배경을 수험생처럼 열심히 들으면서

떼몰려 다닌 한일 고대사 관련 유적지.

 

자그마치 버스 두 대로 들어온 일행 중에는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이 솔찬히 여럿 섞여있고

대개는 선생님들 모임이었는데

 

저녁 식사 시간.

 

나랑 엇비스듬히 앉은 여자애 하나

"선생님"

부르는 소리에

사표 낸 게 언젯적인데 아직도 선생님! 부르면 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버릇 땜에

고개를 드니

엉덩짝 붙여 앉은 채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여자 애 모습.

"???"

 

그러니까 그게

자기네 학교 선생님을 부르는 거였는데

완죤

'니가 이리 와서 내 말 들어라'는 자세.

게다가 불려온 선생님께 한다는 말이

"상추 떨어졌어요. 더 주세요"

고기쌈하다가 상추가 동났으니 냉큼 가져오라는 주문에 다름 아닌...

(언제부터 교사가 제자 식사 서빙하는 몸종이 되었는지..??)

아까참에 내내 가이드가

밥 외엔 추가 할 수 없으니 반찬을 잘 분배해 먹어라 여러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그냥 반찬에다 먹지 그러냐"

손 까딱거림에 불려온 선생님의

매우 온건하신 말씀 

 

"무슨. 리필도 안해주는 식당이 다 있어요??"

마구마구 불만스러운 여자애 투덜거림이 억수로 쏟아지는 풍경,

그건 말하자면 광경,

어이 없는...

 

와락!

그 대단한 제자애와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식사를 시작한 순둥이 선생님을 향해서

나도 모르게 뻗치는 뿔따구.

발끈!

 

"요새 애들은 선생님을 부를 때

 엉덩이 붙이고 앉은 채로 손가락만 까딱거리나 보지??

 것도 지 좋아하는 것에 밥 더 먹어야겠으니

식사 중인 선생님이 숟가락 놓고 가서 제자 반찬 챙겨와라는 심부름 시키려고..??"

 

부러 목소리를 높였지 아마.

그 애 귀에 들리도록...

 

옆자리 앉은 현직 선생님 친구.

"그 정도는 약과다야. 어쩌구 저쩌구..."

 

식사 끝내고 버스에 오르는데

나란히 세워둔 옆 차 창가에 아까 그 애.

손가락 세우고 창문 두들기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떠드는 꼴로보니

아무래도 지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하는 모양.

짐작하면서도 그냥 자리에 앉았더니만

화장실 다녀오신 친구 언니 왈:

"뭔 일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어떤 애가 아주 왕재수라고,

 선생도 아닌 아줌마가 재수없이 기분 잡치게 했다고

 밥맛이라고 

어찌나 펄쩍거리는지 거, 참 대단하더라고..

 

"푸훗!

 그 <선생도 아닌, 재수없는 그냥 아줌마>가 바로 저네요" 

 

소태 씹은 맛!

 

그렇게만 끝났으면 좀 좋았을까만

행선지 옮겨서 버스를 내리면

내 얼굴 앞, 반경 1m 안에 들어서서 드러내놓고 턱짓, 또는 손가락질로

바로 저 아줌마라고, 정말 재수 없다고, 

친구들에게 줄기차게 중계 방송을 하는 여자애... 허. 허. 허.

손가락짓, 턱짓을 소나기로 뒤집어 쓰다보니

완전히 구정물 뒤집어 쓴 기분. 허. 허. 허.

 

(3)

 

아침.

엘리베이터 내려서 호텔 식당 앞. 서둘러 나와서 부페 문 열기 기다리는데

앞에 선 여자애들의 요란한 귀걸이, 마스카라까지 떡칠한 화장.

내가 아무래도 구닥다린가??

여영 이쁘게 봐줄 수가 없구나.고 속으로만 한심해했는데 ...

 

야채샐러드 가지러 가는 내 귀에 다시 들리는 새된 소리

"그 왕 재수가 오늘은 나를 째래보잖아. 웃겨 정말!! 별꼴이야!!"

뒤돌아보니 눈 똑바로 앵그르고 있는 좀 전의 떡칠한 마스카라. 바로 그 얼굴.

와모메! 어저께 그 애가 저 애였든갑네.

 

어이 없음. 황당함. 허.허.허.

하여간 꾸역꾸역 아침을 밀어넣고

로비에 나오니

때 마침 모여 선 후배 선생님들 속에

순둥이 선생님도 섞여있길래

"아니 어떻게 선생님은,

 손가락 까불려서 선생님을 불러 심부름시키는 애를 그냥 받아주고 그러세요??" 닥달 하고

그애네 학교에 근무하는 후배 선생님들을

"대체 애들 생활 교육을 어찌 시켰냐?" 애망없이 호된 소리.

학교 안 실정이 어떻다는 거,

학교 밖 실정도 어떻다는 거, 빤히 알면서도..... 

 

멀뚱거리다가 

아침부터 쏘아댄 내 따발총 사격을 받은 후배 선생님들

실실거리는, 어지러운 표정들. 

 

어쨌건 이 날도 종일

버스만 내리면 우박 쏟아지는 손가락질, 턱짓..

<선생도 아닌, 왕재수 아줌마>라고... 선생도 아닌...으.허.허!! 

 

해도 그렇지. 

암만 어이없어도

애하고 머리끄댕이를 잡겄어? 어쩌겄어?

 

(솔직히 그 애 엄마 얼굴을 딱 한 번만 보고잪다는 생각을 무시로 했음!)

 

마지막 일정은 신사이바시 쇼핑가 자유 쇼핑.

조금 앞서 겄던 여자 애들 중 하나가

들고있던 안내문을 손가락 두개로 잡고는

일부러 휑 내팽개쳐 길에 버리는 모습이 하필 또 내 눈에 잡히다니... 어휴!!

 

그런데 이번엔 나보다 먼저 내 옆에 섰던 친구 선생님이. 

"버려진 휴지를 주워도 시원찮을 판에

 어쩌다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정을 하고 날려?

 너는 꼭 그렇게 쓰레기를 버리고 싶냐?"

엄한 한마디.

 

눈꼬리 짱짱히 세우고 맞바라보는 애의 살벌한 눈빛.

 

"아이고, 야. 야.

 이제 너까지 왕재수 아줌마다!

 재수없는 밥맛들이 쌍으로 붙어다닌다 하겠다야"

어깨 밀고 가면서 내뱉은, 그저, 씁쓸한 한탄

 

남들 좋은 여행 기분까지 망쳐놓을 수 없고,

저걸 대체 어째사쓴다냐??

한심하기 짝이없지만,

그냥 애둘러가는,

깊이 모를 씁쓸함!!! 

 

아서라!! 아이야!

부디 잘 커라!!

머리통 커진다고 절로 어른 되는 거 아니다.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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