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세 며느리 참기름병.

튀어라 콩깍지 2006. 2. 12. 16:09

보름이라는데

나물 하나 장만하지 않고

팥밥도 안찌고..

 

부럼도 안까고...

 

김에 둥글둥글 투박하게 말아놓은 주먹 찰밥

어려선 꽤나 좋아했던 건데..

 

구정 지난 게 벌써 그렇게 되나???

어림잡다가

 

-"!!!!!"

 

올해도 동서네랑 형님네가 참기름 병을 들고갔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푸훗!

ㅎㅎㅎ

 

웃음부터 터지는 건

우리 시어머님.

나중에 돌아가신 뒤,

젯상 걸게 받아드시려고

살아 생전에 미리서 큰며느리에게 정성을 들이시는데

하고많은 <예> 중에서도

명절 때 들려보내는 참기름병이 압권!!

 

아들이 셋이니 며느리도 셋이고

나는 그 중 가운데.

대접도 못받고, 귀염도 못받는... ㅋㅋㅋ

 

결혼하고도

처음엔 방 얻을 자금이 없어서 친정집 아랫채 곁살이를 하고

나중엔 적금 받아 전세 얻어나가고도

큰애는 애보는 아줌마께, 작은 애는 친정에 맡겨 기르느라 친정 부근을 들락거리고,

남편이 나보다 먼저 유학 들어간 다음엔 얻은 방 한칸에 살림만 쌓아두고

딸애 데리고 혼자 계시는 외할머니 댁에 얹혀살았으니 아예 친정살이를 한 거나 같고...

 

본래부터가 생겨먹은 게

친정집에서 빗자루 몽댕이 하나도 들고나오길 싫어하고

시댁에서도 바리바리 묶어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명절 때 시댁에 가면

우리 어머니

꾸러미 꾸러미 묶어서

-"이건 서울 큰아그네 갖고 가그라!" 이르시고

쫄망쫄망 묶은 건 -"막내 니 몫이다" 밀어두시고는

-"너는 할머니랑 사니까..."

이를테면 아무것도 없다는 말. 

늘상 맨손으로 털렁털렁 돌아오곤 했는데

 

한 십년은 그런가보다... 그냥 용돈만 찔러드리던 게

어느날 부당하다는 생각이 쪼매 들어서

-"어머니, 제 생각에는

  어머니의 친 손주를 돌봐주시는, 사돈네 노할머니께

  하나라도 더 싸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 외할머니께는 어머니 친손주가 외증손주일 뿐인데요"

당돌을 떨고

저도 싸주세요.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거 아닌감.

막내동서가 "형님도 달라하세요" 사주를 하기도 했지만... ㅋㅋ

 

외상 꿀값도 둘째 며느리에게 가서 받아가라 이르시면서...

돈 많이 번다고.. ㅋㅋㅋ

(시골 양반들 생각에 학교 선상님이라면

 온 동네 돈을 죄다 갈퀴질해서 통 주체를 못하는 줄 아시니까..)

 

그래서 드디어 얻어 낸 참기름 병.

안방에 나란히 세워둔 병들...

 

-"??? 워메?? 크기가 왜 이려??...

   ....깔깔깔깔!!"

 

나는 안참고 마구 웃음을 터트리고

얌전이 막내는 머쓱해서 눈치만 살살 보고

나보다 세살이나 어리지만 나보다 삼십년은 어른 대접을 받고싶어하는 형님은

내 깔깔거림이 못마땅해서 샐쭉 실눈을 찢고...

 

그러니까 방 바닥에 놓인 병들의 자태는 이러했나니 

(1) 정종 댓병 하나-목까지 가득 차서 까딱 건들기만 해도 흘러넘칠 듯. 

(2) 포도주병 하나 - 할 수 없이 대충 채워져 엎어뜨리기 전엔 흐를 염려 없을 듯.

(3) 소주병 하나 - 붓다 만 것처럼 겨우 절반을 간들간들 넘어서 일부러 엎어도 안 새나올 듯.

 

-"오메! 요것이 긍께 큰애. 둘째, 셋째.. 이 순서래?"

애써 못 본 척 하는 동서 옆구리를 찔러놓고 줄창 깔깔거리니

자꾸만 내 옆굴탱이로 날아오는 형님의, 매우 불편한 눈총....

그런데 나도 심술기 도지면 못말림성인 걸 뭐. ㅋㅋ

 

-"동서, 동서, 있잖아.

   집안 행사 때도 꼭 이 비율로 돈 내면 참 좋겠다. 그지??

   자기는 소주 반병 분만 내라. 이제부터..

   나는 포도주병만큼이면 되겠다야. 그것 차암 자알 됐네... 크크크크!!!"

옆에 앉은 형님의 어깃장을 아주 질러놓고 말았지뭐.

 

그렇지만 넘겨짚지들 마시라

이리저리 돈 들어갈 일 있으니 각자 얼마씩.....

이런 전화 엄청 싫다. 나는.

마음 있으면 빚이라도 내고, 마음 없으면 쌓아두고서도 하기 싫고...

해서

아버님 전화 받으면 "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냥 나 혼자 낸다.

내가 받기 싫은 전화 누군들 반기겠나 싶기도 하고

내가 감당할만하니 아버님이 내게 전화하셨을 거다 하면서...

-"혹시 다른 형제들 알면 같이 못한 게 속상할 지 모르니 말씀 하시지 마셔요."

부탁까지 드리면서..

 

그러면서도 고넘의 심통이 문젠 거다.

기언치 오금을 박아놓고야 마는...

기언치 형님께 미운털 박혀가면서.. ㅎㅎㅎ

 

단순하신 우리 어머니.

이후로도 일내 그러신다.

청주 댓병이 소주 댓병으로 바뀐다거나 포도주병이 맥주병으로 바뀌기는 한다.

동서 몫으로 갈라놓는 두홉들이 소주병만 변함없이 그대로다.

시댁엔 술 드시는 분이 한 분도 안계시니

우리 어머니. 며느리들의 참기름을 가르기 위해 부러 세 종류의 병을 얻어오시는 게다.

올해는 댓병과 두홉병 둘 만 얻어오셨겠고만..

 

기실

그런 게 욕심 낼 일도 분개할 일도 아니다.

얼마나 작은 사소함인가??

생각날 때마다 피식피식 웃을 일은 된다..

그렇긴 해도 우리 어머님. 분명 생각 잘못하신 게다.

안보이는 데서 마음 가는 며느리에게 펑펑 집어주실지언정

나란히 세워둔, 저 하찮은 참기름 병 따위로 차별을 하시다니..

받으실 땐 절대 차별 안하시면서... ㅋㅋㅋㅋ

 

동서가 암만 얌전하고 착해도 먼지처럼 사소한 서운함이 쌓이면 

팍팍해지는 쪽은,

어머님이, 차려진 밥상 한번 들게하는 것조차 아까워 벌벌..떠시는 

어머님의 귀한 아들일 것이니...

 

며느리들 사이도 도움이 안된다는 걸,

걸게 받아드실 젯상에 가려서 안보이시는 게다. 그게 아직. ㅎㅎㅎ

게다가 그런 우리 어머님,

독실한 교회 권사님이시다. ㅋㅋㅋㅋ

  (권사님께오서 젯상 걱정을?? ㅎㅎ

   -그건 믿음의 문제라기 보다

     그렇게 살아오신 평생이 함축된,

     무의식적 습관으로 나타난 행위일 뿐인 게다.)

 

올해도 착한 우리 동서.

가까이 산다고, 솜씨 좋다고, 일은 혼자 다 하고

눈 한 번 똑바로 못 뜨고 두홉 소주 반 병 참기름 얻어가면서

댓병 참기름 서른 병 값은 용돈 넣어드리고 갔을 게다. 아마.. ㅎㅎㅎ

 

목까지 가득 섭섭함이 차올라야 겨우 한두마디

소리 낮춰 나더러 하소연하다 말곤 하는데

올해는 혼자 꾸욱 담고 갔겠구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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