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아, 참 기분 좋다.

튀어라 콩깍지 2006. 2. 13. 16:31

소포지 꺼내서 포장을 하다보니

하나, 둘, 셋... 한참이다.

이사람 저사람 챙겨보내고 싶은 게 많아서..

 

빠진사람들 아쉽지만 몇 명이라도 우선..

 

큰 우체국을 찾아가려다

건너편 길에 오는 차가 없어서 순전히 차 돌리기 쉽다는 이유로

냉큼 동네 우체국을 들어간다.

 

직원 세명에 창구도 셋인 미니 우체국. 

 

소포 담당의 직원이 무게를 달다가 옆 직원을 부른다.

-" **상!, 지혜 좀 빌려주세요"

-'뭔 소포 부치는데 옆사람 지혜까지 필요해??'

생각하는데

둘이서 한참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한다.

부피 작은 소포로 처리를 할 것인지, 그냥 소포로 취급할 것인지..

그러니까 무게와 값을 비교하여 더하고 빼고를 한참동안 한 다음에

발송료가 적게 나오는 쪽으로 해주려는 게다.

고맙기도 하지.

 

분류해서 내주는 발송표에 몇가지 기재하는 사이,

새 손님이 와서 기재를 마친 나는 잠시 기다린다.

전혀 다른 창구에 앉아있던 직원이 빙 돌아 내 옆으로 총알같이 오더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아주 미안하다고...

아니 뭘 그렇게까지... 내가 그만 황송해진다.

그래봤자 몇 분이나 걸린다고...

 

소포 부치고 나와서 시동을 거는데

담당 직원 후다닥 뛰어나온다.

서명이 빠졌단다. 이런. 미안하게시리...

차 밖으로 나오니 내가 문에 먼저 들어서도록 비켜섰다가 내 뒤를 따라 들어온다.

복잡하게 해서 아주 죄송하단다.

서명 빼먹은 내가 죄송한 게 아니고?? 워메! 미안한그으~!

 

다른 손님들 들어와도 얼마나 싹싹하게 웃고 얘기들 나누는지.

  

일본에서 관공서에 들어가면 우선 기분이 개인다.

모든 촛점이 손님에게 유리하도록, 편리하도록 맞추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느라 애 쓰는 게 정말 눈에 보인다.

덩달아 나도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고마워서라도..

 

프로 의식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르바이트로 식당 설겆이를 해도, 감독하는 사람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 처럼 해 내는...

일의 중요도 보다도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의 성실성이

제대로 된 프로를 길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애석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어떻든 티를 잡는다.

뭐가 틀렸다는 둥, 뭐가 부족하다는 둥, 규정이 바뀌었다는 둥...

자국민의 편리보다는

나중에 일 생기면 누가 책임지냐?? 즉, 나는 책임지기 싫다.

그래서 해줄 수 없다.가 먼저일 때가 많다.

 

어떻게든 도와서 일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티를 찾아서 안해주고

어떻게든 나중에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는 게 우선인 게다.

구조의 모순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도와서 일을 빠르고 쉽게 해결해 주겠다는 의식은 확실히 부족하다.

그러면서 그게 원칙인 줄 안다.

원칙이란 무릇

고객이 빠르고 쉽고 안전하게 필요한 일을 처리하도록

최대한으로 돕는 것이어야 할 것을..

 

혹시라도

그 계통의 현직 거물을 한 명만 업으면 만사 형통인 것도 웃긴다.

 

누군가 전화 한 통만 때리면

서너 명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 서로 더 못 친절해서 야단을 하면서...

 

거물들을 많이 알지도 못하는 

혹시 알아도 덕 보고 싶지 않은,(꼴에 깡은 있어갖고..) 

나같은 피래미들은

그저 발로 뛰다가 퇴짜맞으면 다시 서류 만들고 또 퇴짜맞으면 또 갖추고...

나중에 보면 정작 필요한 서류는 두어가지에 불과할 때가 많더라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오히려 공무원들의 친절도를 강조하다보니

이젠 객으로 가는 사람들이 생떼거지를 쓰는,

진풍경도 많이 벌어진다고 한다.

너 나한테 잘못 보이면 위에다 꼬나바쳐서 어떻게 해버린다는 식의... ㅋㅋㅋ

그러니 부당하더라도 내가 해달라는대로 뭐든지 해줘야 마땅하다는 식의 어거지.

 

힘의 역류일 뿐인가??

 

가만 생각해보니 일본에선

관공서에 딱딱한 일보러 가는 게 즐거운 일이다.

어찌나 친절하고 어찌나 성의를 보이는지

도무지 딱딱한 표정으로 있을 수가 없어지는 게다.

 

나처럼 왕무뚝뚝도 그 쯤 되면

활짝 개인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명의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화들짝 마주 인사를 한다

 

나오니

건너편 길 공사장 정리하는 아저씨

어느 새 내 차 뒷편에 달려와 선다

"어느쪽?"

"이쪽"

좁은 길을 잠시 막고 내 차를 편히 빼도록 교통 정리를 해준다.

우체국과는 생판 상관없는, 도로 공사장 아저씨.

돌아보니 내 차 빠지는 걸 확인하고는 잽싸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소한 친절이

종일의 기분을 맑게한다.

 

아, 참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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