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나는 너를

튀어라 콩깍지 2006. 6. 15. 04:39

콩깍지
일본에선 뭐하고 지내니?

<중략>

 

동생 **도 잘 살고
내가 업어 키운 **도 잘있니?
아빠 되었겠지?

 

참 지지리도 못살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에

해바라기처럼 목 길게

너의 행복을 지켜 보던 기억이
절절히 떠오르는구나~

 

보고 잡다~

 

십 수년 만에

찾은, 내 친구의 쪽지.

가슴 아프다. 저르르..

 

그래

그랬을 거야

나도 네 생각 많이 했어.

어리고 철 없어서 내가 아무 생각없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기만 하던 것들이 

네 몫을 빼앗은 것일 수도 있었다는 거.

몰랐어.

한 번도 찡그리거나 샘난 표정을 짓지 않고 늘 반겨주던 네 모습.

살면서 생각날 때 마다 아팠지. 부끄러웠고.

 

내 동생.. 니가 업어키웠구나. 생각도 안나는데... 내가 그래.

 

해바라기처럼 목 길게

네 행복을 지켜보았다는 네 말.

울컥 눈물 나.

 

너나 네 어린 동생들 두고 네 엄마는 나나 내 동생을 업었고

부엌 문에 선, 배 고픈 너나 네 동생들 두고

누룽지 하나라도 뭉치면 꼭 내 손에 쥐어주시던 네 어머니.

그때 맘이 어떠셨을 지

이제야 헤아려져.

 

도시 여고를 다니던 때

집에 다니러 가면 네집부터 달려가던 것도

그저 네가 보고싶다는 생각밖엔,

학교도 못가고 완행 정류장, 표 끊는 네 생각은 못했어.

 

그 때

그 작은 손거울과 빗.

어느 해 방학 때, 집에 내려간 내게 꿈꾸는 목소리로 네가 그랬지.

그거 갖는 게 소원이라고.

 

뒷통수를 둔기로 얻어맞고

정신이 나간 느낌이었어.

당장에라도 열개는 사 가질 수 있었던 내겐 네 말...솔직히 충격이었거든.

네가 읽었으면 좋을 책 따위랑, 손거울 사들고

너희집에 가는 길은 무거운 침묵의 길이었지.  

 

그 말

사촌동생에게서도 들었어.

언니는 뭐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자랐잖아.

나는 그런 언니 보면서 그저 부러워했을 뿐이야.

할머님이 나이 들어서도 그저, 언니, 언니밖에 모르신다며

볼 멘 소리 끝에 딸려나온 쇳소리였지.

 

다 양보하고, 심지어 나를 받들어모시기까지 한(?) 너는 내게

단 한 번도 심통스런 표정조차 지어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거두고 살폈던 사촌애가 그러더라. 내게.

 

맘이 내내 아렸어.

그래. 그랬겠다.. 하면서..

몰랐지. 몰랐어. 어리기도 했지만 알 필요가 없었던 거야.

나는 누리는 쪽이었으니까.

그런데 있지..  알려고 하지 않은 게 큰 잘못이더라.

 

나는 그저

내게 남는 여분의 한 귀퉁이.

맘 내키면 조금씩 떼어 나누는 걸로

자기 만족에 겨워하는 철딱서니였을 뿐이었지.

꿈 꾸는 연습만 하면 되었던 때잖아.

 

늘 보고싶었고

생각날 때마다 오래 아팠어

너나 사촌애의 아픔이 전이되기까지

사십여년이 필요했던가 몰라.

 

나이 들어 다 늙으셔서도 오다가다 나를 만나면

수줍은 듯 어려워하시던 네 어머니

... 이제 돌아가셨구나.

 

그래

보고싶다. 여전히.

무섭기도 해.

아직 해바라기 하고 있을까봐.

목 길게 늘이고...

 

그만..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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