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의 노래 <처음부터 끝까지>에서처럼
슬프게도 내 바다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났더란다.
퇴근 러시에 걸려 차가 지지부진 잡혀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겨우 시내 벗어나니 이미 날은 어두웠고,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새파란 물결 대신 그저 콱 막힌 먹탕빛 뿐이었지.
도중 다시 한 번 극심 정체... 교통사고래.
갓길도 없는 국도, 외길에 갇혀서 마냥 기다리다가
오밤중에야 호텔.
바닷물이 턱에 걸린 위치인데도 바다가... 안 보여. 깜깜
편백나무 감촉 좋은 목재 노천온천에서 파도를 헤아리리라던 꿈도 파삭!
명치끝 시린 바람만 뺨을 할퀴더라니..
<같이>라는 말의 뜻은
<각자 자기 차에 타고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열심히 달리는 것> 정도로 변형된 건 아닌가 몰라.
얘기 한마디 섞지 않고서...
늦은 식사와 온천만으로 12시를 넘겼지. 흩어져 잠자러 가기에도 바쁜 시간.
남편이 들고간 맥주박스는 물론, 시장 열심히 봐 온 과일이며 간식거리... 도로 들고왔어.
둘째 날.
통유리 너머로는 자욱한 물안개...
그래도 베란다에선 파도 소리가 지척이긴 하더라.
그런데 일행 중 한 분이 아팠어.
암 수술을 1년 전에 받았다는데 몸이 아직 예측불허.
순식간에 노래지는 얼굴빛에 모두들 당황, 걱정,
그분 가족들 돌아가니 벌써 낮참.
등대가 고적해뵈는 섬과 종유동굴 한곳을 휘적거리며 건성으로 돌아보긴 했다.
직년 요맘 때 애들 데리고 갔던 동굴.
아키요시 석회동굴을 앞에서 손가락 마디만큼의 부엉이 인형을 다섯개 샀어.
흙으로 빚어 구운 갖가지 생김의 부엉이들..
으이그~! 싶을만큼 귀여웠거든..
난 아직도 그런 게 좋더라.
새큼살이나하면 딱이겠다싶은 인형이나 미니어쳐 따위가 물리지도 않고 이뻐.ㅎㅎ
합창 발표회에 간다는 옆지기 선약 때문에
카르스트지형을 보러가는 일행과 헤어졌지.
1시간 쯤이면 끝날 줄 알았던 발표회가 아이구!! 물경 세시간!!
가느다랗고 높다란 무반주 가스펠송.
뭐랄까, 마치 중국 경극을 듣는 것 같은 발성법.
얌전한 아이가 일주일 굶고 건네는 아침 첫인사처럼 잡티 없지만 기운따가리도 없는 목소리.
바람에 간당간당 파닥거리며 다시 불꽃 올리는 촛불을 보는 느낌.
흑인 신부님의 성경봉독과 메세지 전달도 이어지고...
마친 다음엔 왁자한 인사.
일곱시를 넘기고서야 겨우 풀려나서(?) 주차장에 갔더니...
이번엔 또 문이 잠겼어.
키도 주지않고 사람 찾으러 달려간 남편을 기다리고 서있는데
고만 울고싶더라.
춥고 배 고프고 지치고... 덜덜덜~~!!
여차저차 하여튼 집에는 왔어
하이고!!
혼자 남겨둔 분풀이를 한 건지 깜이넘조차 안타를 날렸고만.
다림질하려고 밀쳐둔 남편 와이셔츠 더미에 푸르르 쉬~~!!.
마지막 장식은 나.
다림질하다가 손가락에 물집을 잡고 말았지.
아무래도 요 이 삼일간, 뭔가가 씌였나봐. ㅎㅎㅎ
오늘은 명색 ...마스 이브.
종일 혼자 있었어. 집에.
소품용 캔버스를 조르륵 늘어놓고 밑칠 하면서 방방 떴지.
줄창 문을 열어두는데도 습기로 눅눅해서 해 볼 도리가 없는 방안에서
수채 물감에 곰팡이가 피었더라
잘 단속해서 뚜껑 열어두었는데도..
고슬고슬 잘 마른 온돌이 마냥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