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씨(일상)

여우 딸 여우 엄마

튀어라 콩깍지 2005. 6. 17. 15:37

"어엄마아~~!"

전화기 저쪽에서 오랫만의 목소리

"아이구 내 딸!!"

(주의! 이 대목에서 무조건 감격하면 안됨! 딸년이 데꺽 알고 요구 사항이 배가됨!)

곧바로 목소리를 차분히 다듬고

"아픈 데는 없냐?"

"네. 괜찮아요홍~! 엄마는?"

(얼라리? 오늘 목소리 상냥 정도는 최상급!! -- 긴장! 긴장! 맘을 다잡고) 

"별 일 없다 다들... 뭐 어려운 거 없냐?"

(아차차! 실수!! 어려운 일이라니... 꼬랑지 잡힐 소리를... 아니나다를까..)

"흐응~!(혀를 좀 꼰 다음에..) 있잖아요 엄마아~! 요번 달 생활비... 못 드렸는데..."

그럼 그렇지 요녀석!

"어쩐지..."

"호호호... 제가 7월에 간댔잖아요."

"무시기? 4월에 말할 때 6월이랬잖여? 아주 잔소리 안들으려고 멀찌감치 잡는다 했더니만.."

"내가? 그랬어? 흐흐흐...6월엔 못 가. 아잉"

"생활비 와서 가져가 못 보내"

"아따메, 엄마아아~!"

 

내가 대학 다닐 땐

   콩나물: 50원

   노트 :   20원

   책 :     300원

   양발 :  120원

......................

   계       490원  이랬다

애교 떨어가며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기가 너무 쑥스럽고 아버지께 미안하고...해서 그랬던 건데

우리 엄마는 위와같은 내 청구서를 받고 까무러치기 직전!!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답게 4년을 줄곧 저 따위 청구서로만 때웠다. 

모시조개같이 입을 꾸욱 다물고.

아이고 아이고 내가 어쩌다 저런 딸년을 낳았을꼬? 엄마가 몹시 억울해 하셨지만

나는 안다

내가 청구서 보내준 것만도 반가워서 자지러지시는 것을...

내 이름 석자 찍힌 것만도 아버지 어머니는 맨발로 달려나와 엎푸러지셨지

 

딸년의 상냥해터진 전화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게다가 내 딸은 알바로 생활비를 번다.

열배는 화폐가치가 비싼, 남의 나라에서 알바와 장학금으로 살아내는 딸년이 실은 눈물나게 고맙다.

편히 못해주는 맘이 아프니 오히려 큰소리 빵빵!

입학금 내준 걸로 엄마 할 일 끝!! 대신 반드시 졸업장 받아올 것!!이

유학 가겠다는 딸에게 내건 조건.

착한 내 딸 그 말대로 혼자 물 건너가서 낑낑끙끙 살아내고 있다

전화비 아끼느라 전화까지 참으면서(??요년!)...

 

다행히 가족도 같은 지역으로 들어왔지만 너무 멀어서 여전히 얼굴 보기 힘들다

이번엔 전화비보다 훨씬 비싼 교통비 아끼느라 안온다

얹혀사는 선생님께 렛슨비와 생활비를 못드렸나보다.

와서 가져가라는 건 억지를 써서라도 딸이 보고싶다는 내 맘의 완곡한 표현. 

 

착한 내딸. 밝고 씩씩하게 자라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그런데 나는 왜 얼굴 앞에서 이런 말을 못할까? 숨구멍마다 소름 돋는 듯 해서 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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