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계집애로 촐랑거릴 때
무던히도 붙어다니던 친구
3년 전에 한 번 만나고
그보다 15년 전에 또 한 번 보고
그보다 10년 전에 한 번 봤으니
평균 잡아 10년에 한 번 씩 본 셈이네. 풋!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는 바람에 헤어진 뒤로 줄창 그 모양인데
어제 만나고 헤어진 얼굴처럼 가까워. 늘상.
부모를 일찍 여의고 겨우 한 살 위의 언니와 둘이 살았던 친구는
장학생 뺏지를 편지 봉투에 넣어 내게 생일 선물을 했어
모든 선물이 다 귀하지만 그 해 생일 선물은 목이 잠기는 각별함이었지
부모님도 안계신 애가 어버이날엔 카네이션 사들고 가서
집 떠난 나 대신 우리 부모님께 꽃을 달아드리고는 싱글거리더라며 내 부모님도 목 메어 하셨어
차암 묘한 구석이 있는 애였어.
묘하다기 보다 당찬... 흉내 낼 수 없는 삶에 대한 당당함. 패기. 어린 그 나이에...
대학 땐
난데없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많았어
사는 지역이 한참 뚜욱 떨어져서 아무 때나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거든.
책도 두고 가고 일기장이며 장갑이며 필통주머니 같은 거.. 늘상 나를 위한 선물을 두고 갔어
아무도 뒤를 봐주지 않는, 봐줄 사람이 없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는 지 모를 처지였으면서...
결혼 하고선 더 보기 힘들었지
나도, 친구도 직장이란 게 생겼고 가족이 생겼고 아이가 딸렸으니까.
일년에 한 번.
이년에 한 번. 이렇게 터울이 길어지더니
급기야 10년에 한 번... 그 짝이 난 거야
내가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자 보고싶어서 부지깽이로 부뚜막 두드리며 울었다는 그 애.
나중에 한 집에서 꼭 같이 살자던 약속. 한 번도 못 지키고(??)
남들이 평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한 험한 일들 혼자 다 쓸어 겪으면서도
가진 게 뭐가 있다고 그저 나눠주기 바쁘던...
너는 대체 속옷도 두 장 안가졌을 거라며 타박놓으면 삐긋이 웃고 말던..
그 넉넉함과 너그러움과 당당함이 어디서 그렇게 끝없이 솟았던 걸까?
먹고 사는 게 힘들었을 나이에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던 괴물같은 애.
미국 들어간 지 벌써 십 수년.
스승같은 친구를 찾고 싶다는.
또 다른 동창애의 연락.
친척도 누구도 남아있지 않아 연락할 길이 없다는...
돌고돌고 물어물어 겨우 내 연락처를 찾았다는...
그애랑 단짝이었으니 나라면 틀림없이 연락이 닿을 거라는 기대로...
가끔 그런 애들 있어
나를 찾기 위해 찾는 게 아니라 그 애를 찾기위해 수소문해 나를 찾는...
그러면 어때.
그래. 닿아. 닿고말고.
두어달에 한 번 전화를 하거든. 아니 서너달인가?
애녀석이 한국어 딸린데서 저번에 책 한 박스 보냈어
헌 책 보내지 뭐하러 새 책 사보냈냐며 타박 놓느라 전화했더라.
아니야 절반은 읽은 책이야. 발싸심하고도 한참 소리 들었다
3년 전에 보니 여전히 몸집은 조막탱이만 하더라
여전히 야들거리는 피부 빛 뽀얀 게 통 고생 안한 사람처럼 밝고말이야.
속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부잣집 공주님인 줄 착각할 만큼 맑더라니까
참 여러모로 어이가 없어.
미국 들어갈 때 간호사 합격한 것도 간염 보균이어서 취소됐더란다
뭔 일이 그애에겐 그리도 첩첩산중이었을까?
한살 위 언니도 암이었거든
들어가기 전까지 언니 병 간호한다더니 아예 암 병동 호스피스가 됐어
몇년 동안 암 환자들 임종을 지키더라구
그렇게 저렇게 이주비가 없어 자꾸 길어지는 몇 년 보내고
겨우 들어갔다가 들어가자마자 직장이 막혔던 거야
몰라 어떻게 살아냈는 지
묻는다고 대답할 애도 아니고 나도 묻지도 않았거든
요즘은 그래도 두 개씩 뛰던 직장 한곳은 그만 두었다나봐
놀러오라고 성화 부리는데 놀러라니.. 어딜 가.. 속도 없이...
또 입던 옷까지 다 벗어주겠다고 덤비면 그걸 어쩌라고(??? ㅋㅋㅋ)
내가 복이 많아
어제 보고 오늘 또 본 듯 10년 세월이 단숨에 무너지는 친구들 그리 흔치 않잖아
보고싶다.
그 애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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