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발 동동

튀어라 콩깍지 2005. 10. 31. 13:38

아침 여덟시에 나간 녀석이 밤 7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다

안오는 게 아니라 아예 소식이... 전화도...

 

딱 한 번 연락 없이 안들어오던 날이 있었다.

오래 전에.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오사카에서 살 때

퇴근하고 들어오니 애 녀석이 없다

누나도 모른단다.

딸애가 나보다 더 살뜰히 동생을 잘 챙겨서

어두워지기 전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거나 놀이터를 돌아서 찾아다놓곤 하는데(??)

그날은 어디에도 없단다

 

뭔지 모를 불안함이 와락 밀려들고

찾으러 나가는 발이 덜덜 떨렸다. 이유 없이.

딸애를 차 옆에 앉히고 학교 주변이나 갈 만한 곳을 돌면서

혹시 사고 흔적이 있는 지, 자세히 살피라 일렀다.

어디에도 없었다. 어떤 흔적도.

도중에 몇 번 집에 전화해도 안받고..

여덟시를 넘기고 아홉시 무렵.

집에 돌아오니 전화 불빛이 반짝인다

 

"교감입니다. 애가 지금.."

 

병원에 있었다.

심장 떨리게 하던 예감대로 사고.

 

네 살 무렵. 또 한 번의 사고.

내 눈 앞에서 여지없이 오토바이에 받혀 아스팔트에 떨어지더니

파르르 눈 감고 조용해지던 아들놈.

내 입에선 비명도 안나왔다. 완전히 얼이 빠져서.

 

그 날

유학 중이던 애 아빠가 잠시 귀국했다가

아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들어간다며

친정에 있던 애를 불러올렸다

겨우 얼굴 한 번 더 보고 애 아빠는 새벽 차를 탔고 

한 나절 놀던 애가 군것질을 한다해서

혼자 보내기 위험하다고 내가 따라나선 게 오히려 화였다

가게 문을 나서는 데 아는 분이 지나가시다 애 아빠 안부를 묻질 않겠나

인사하고 대답하느라 손을 놓은 시간이 불과 1, 2분도 안된다. 

굉장한 속도로 아랫길에서 올라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순간 바라보니

벌써 내 눈앞에서 부딪고 나동그라지고만다

나는 그냥 깎은 돌조각처럼 파랗게 굳었고

마침 경찰서로 돌아가던 순찰차가 멈췄다

태우고 병원을 향하는데도 애녀석은 조용했다

 

외상 없고, 토하고, 의식없는 게 가장 무섭다더니

그 셋을 다 했다

두개골이 앞 뒤로 벌어진 중상이었는데

워낙 뼈가 무른 아이라 출혈이 뇌를 압박하지 않고 피부 쪽으로 새어나온 덕에

아직 살아있는 거라고

의사 얼굴도 노랬다

 

뱃 속에서부터 비실거리던 놈.

네살 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리고 초등학교 때 두번 째 사고

 

해서

녀석이 연락없이 늦어지면

나는 반사적인 심장병을 앓는다.

쿵쾅거리면서 숨이 잘 안쉬어질만큼의 불안.

신경증이다 하면서도 매양 그렇다

운전하다가도 길 가에 애들 보이면 가슴이 쿵쿵 뛴다.

혹시 저애가 달려들면 어쩌나.. 거북이 걸음으로 기어서 지난다.

뒷차가 바쁘다고 경적을 울리거나 말거나..

 

그런데 이녀석이 또 연락없이 안돌아온다. 날은 껌껌한데.

 

야채와 해물을 볶아서 짜장을 만들면서 자꾸 밖을 건너다보다가

가스 불을 끄고(껐다고 생각하고) 겉옷 걸치고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춥다

도로 공사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붉은 지시등을 휘두르며 아직도 교통 정리를 하고있다

옆에 서서 내내 발을 굴려도 애녀석이 돌아오는 게 안보인다

시내 버스가 몇 대 지나가고 신호등이 수없이 바뀌고...

 

동동거리다 집에 와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한다

"우찌노 꼬가 마다 카에테 코나인데스. 센세."(우리집 애가 아직 안돌아옵니다, 선생님)

아침 일찍 봉사활동을 나간 길이었다. 반 친구들과..

담임은 우리집 녀석이 아주 열심히 참여했다고, 

신바람이 나서 막 반겨 얘기 시작하다가 에? 반문했다

봉사활동은 3시에 끝났단다. 종일 쓰레기 처리를 정말 열심히 잘했단다.

쓰레기 처리가 문제가 아니라 애놈. 애놈!!.

같이 간 친구들에게 전화 해보겠다는 담임선생님은

경력만큼이나 노련해서, 목소리부터 일단 나를 안심시킨다.

 

냄새! 냄새!

가스 불 위에서 짜장은 아주 숯이 다 되었고....

어? 불 껐는데?

껐으면 이 사단이 났을까?... 아마 맘 속으로만 껐던 모양.

다시 호박 꺼내 껍질 벗기다가 이번엔 칼이 어긋나면서 왼손 중지 손톱의 중간 부분을 여지없이 베어놓는다.

붉은 피가 손톱 위로 좌악 번진다.

불안, 불안, 불안, 불안...

 

비르르~

전화.

남편이 나보다 먼저 우루루. 받는다

"뭐? 어디? 어떻게 올려고? 지금까지 어디 있었는데? 누구랑?"

휘유! 안심 안심!!.

그 다음엔 괘씸... 이.누.무. 자.식.!!

 

얼마나 공원 쓰레기를 열심히 치웠던지 돌아오는 도중에 잠깐 들른 친구 집에서 그만

떨어져 잠이 들어버렸더란다.

하도 잘 자니 그집에서도 깨우지 않고 두고 보기만 한 모양이다.

어이구 잠보 아들놈!!

차 시간이 어중간해서 친구 자전거 빌려타고 집까지 먼 길 달려왔단다 

늦은 저녁밥 숟가락 뽑은가 하니 애놈 벌써 잠들었다.

 

여든 된 엄마가 환갑된 아들 걱정한다더라.

차 조심하라고...

나도 꼭 그럴 것 같다. 병이다 병! 중병!!

 

어매 속이 쫌팽이라고 야단만 하지 마라

누구라도 아들놈이 눈 앞에서 차에 받혀 떨어져 두개골 벌어진 꼴을 본다면,

그래서 납덩이처럼 파래져서 의식없는 꼴을 본다면,

연락 없는 날이면 엉망이 된 채 병원에 엎어져있다면,  

그게 평생 꿈 속에서도 따라다닐만큼 악몽이 된다면, 

나 정도 신경증은 불도저 앞에서 삽질하기다.

 

휘유!

놀랬다...... 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