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학급씩 되는 도시 학교를 졸업하면
동창 얼굴도 서로 다 못익히고 흩어져서 얼굴 기억도 안나는 사람이 많으니
애틋하기도 그저 친한 몇사람에게만이고 말 한 번 나눠보지 않은 사람은 잊고마는 듯 싶다.
그런 데면데면함조차 불편하거나 애서롭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가 근무한 첫 학교는
뭍을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2/3를 넘었었다고 기억한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여덟학급이었는데
1학년 애가 3학년더러 해라를 뻥뻥하기도 하고.
"이 녀석아, 선배에게 말투가 그게..." 나무라면
"조칸디요" 눈을 흡떠서 말문을 막던..
한 다리 건너면 죄다 사돈네 친척이 되는 아이들.
눈이 땡그랗고 몸집이 작은 아이가 있었다
내가 담임 맡은 아이들보다 한 학년 아래
그애랑 어찌어찌 연락이 닿았던 건 이 삼일 전 얘기했는데
동창 모임 카페에 들어가니
나와 통화한 다음에 기뻐하는 녀석의 글이 올라있다
아래, 그 글의 리플.
. 다 내 덕인줄 알어라. 알긋나 친구~~~오늘도 힘내고 열심히 일해
. 너는 조컷다. 첫사랑 선생이랑 통화해서..
--들켜부럿네
--ㅎㅎㅎ 어이어이, 위에.. **아저씨!! (내 리플)
그보다 압권은 가입 인사에 달린 댓글. 아래!
선생님 참 밥갑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본에 계신가봐요? ...
구장리 보리베기 근로 동원 갔을 때 밭주인 아줌마는 북감제(감자) 쪄오고
미술선생님께서는 반공탑 (70.80년대 각마을 입구에 있던 네모난 돌탑...때려잡자 김**
...그런 거 써있던)에 페인트 묻히고 글씨 쓰시던 거 생각납니다
!!!!!!
때려...잡...자???
우하하하.. 허리를 꺾는다.
그리고
퍼뜩. 생각난다
그래 그때. 보리베기.
이후로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무의식의 기억이 선명하게..
이장님이 미술선생님 오면 부탁한다고 아주 벼르고 계시던 글씨.
동네 어귀 돌기둥 반공 표어.
아마 말들이 죄다 그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정확치 않지만 쓰면서도 민망하던 말들.
야산 언덕에 흔히 시멘트 블록으로 대문짝만큼씩 박아놓던,
과격한 단어들... ㅎㅎㅎ
사다리 딛고 올라가서 하루 종일 땡볕 받으며 썼지 아마.
글자 수 많고 네 면이나 되는데다 닳고 빠진 붓으로 익숙치 않은 페인트 작업을 하기가 수월치 않았으니..
아이구,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고 댓글을 달았는 지...
한참 웃는다
오후까지 사다리에 붙어있으니 지나는 동네 어르신들마다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하시던...
정말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섬.
이름도 아름다운 청산도.
아이들도 꼭 그렇게 푸르고 단단하고 순진한 바다빛이었는데..
반짝반짝 깻돌들...
그 깻돌들이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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