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아파트 현관벨이 울렸다
복도 앞 문에서 누르는 벨소리보다 훨씬 현란하다. 메아리처럼 긴 여운을 꼬리로 달고...
"하이"
어쩌려고 일본어로 대답한다.
늘상 "누구세요?" 세된 소리를 높이는데...
찾아올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 알면서...
울릴 일 없는 전화벨이 발악하듯 아주 가끔 악을 내질러도
"여보세요"하고 만다. 거의 언제나.
어쩌다, 정말 어쩌다 친지들이 전화를 걸고는
"뭐셔? 시방.. 비싼 국제 전화비 물고 전화했는데 여보세요라니??..." 투덜댄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걸 땐,
"모시 삼베 무명 다우다 ..." 마구 주워삼켜서 정신 사납게 만들어놓고 본다.
"왜에~? 모시모시 정도로는 부족하잖여? 비싼 밍크, 쎄무로 바꿔줘?" 눙치면서...
"아! 아노... 유빙교쿠데스. 고쿠사이 코쓰즈미난데스가...(우체국입니다. 국제 소포입니다만...)"
잽싸게 문 열고 복도에 나가 기다린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포장 뜯으니 곧장 눈 안으로 달려드는 지구 밖 초청 메세지..
딱 지금 내 맘인데.. 지도 정도가 아닌 아예 지구 밖으로 떠나고 싶은...
<그 여자의 자서전>-김인숙
떠나는 날 자서전 따위는 안남기리라.(뭘 자서전 씩이나..)
그리고 씨네21... 흐뭇!
티셔츠, 베이지색 조끼, 인디언 쉐타...
辛라면, 짜장범벅, 호도쿠키, 참 비스킷, 오미오미 누룽지.. 푸짐하다.
이사올 때 부쳤던 거며 여름에 나가서 부친 책 다 쌓아놓아도
굴 파고 앉아 읽으면 몇 일 못간다.
워낙 할 일 없는 사람이라(?) 냅다 읽어치우면..
해서 수험생 공부하듯이 재탕 삼탕도 읽는다.
내심 일본어 자신있다 으쓱해봐도 말짱. 밑이 뻔해서 일본 책 읽다보면 막힐 때가 있고(아주 많고 ^.^!)
사전 들추면서 읽으려니 진짜 고시공부하는 수험생같은 착각이 들어서 시들해져버리고,
일단 시들해지면 진도 통 안나간다.
인터넷 안에 통채 책을 올리는 사이트에서 내려받거나 화면으로 보는 건
역시 익숙치 않고 눈 아프다.
나는 책 읽는 자세가 방자해서
앉아 읽다가, 기대 읽다가, 턱 괴고 읽다가, 한쪽 어깨로 고개만 받치고 읽다가,
드러누워서 책 한 쪽을 수직으로 세워서 곁눈질로 읽다가...
실로 불량한 데
정좌하고 자막 들여다보자니 견갑골부터 무너지려해서
여영 디지털형은 글렀고
필시 아나로그 아니면 안되겠더라니...
해서 다운받아 프린트를 했더니만 아이구메!
한장씩 날라댕길라해싸서 간수하느라 그게 더 골칫덩이더라.
고상한 남편이 박스 박스 들고 온 건,
일본 속의 한국문화라거나 친일 논설 선집, 교과서 분쟁을 넘어서, 한국 역사소설의 재인식, 21세기 한반도 문제, 남북한 반세기...
이런 거 딜다보려고 안해본 것도 아니지만.. (일단 한국어 활자니까...)... 미친다.
애녀석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티셔츠랑 조끼부터 챙겨입는다
벌쭉해져서...
누룽지과자 터서 내입에도 밀어넣고.. 그래. 맛있다.
준비하느라 돌아다녔을 발길, 손길.. 그 수고가 고맙고...
어째 맘이 찌잉하고 아릿하다..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 여자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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