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자들을 20년 만에 찾았다
남해바다 끄트머리. 한 점 섬아이들.
마흔을 바라보는 늙다리(??)들이 되어있는...
내 머리 속엔 그저,
치마 입은 채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여자애들,
아랑곳 않고 그 아래서 딱치기하는 남자애들.
치마 거머쥐고 엎드린 남자친구 등짝 위로 폴짝 내려앉던 여자애들
송충이 잡아와서 나를 겁주려던 남자애들...
그 때의 모습들 뿐인데...
때 맞춰
어디 시원찮은 책에 실린
내 글을 어떤 녀석이 아주 우연히 읽었다
친구들 카페로 옮겨가고
거기 그 녀석의 학창시절 추억의 글이 장문으로 네 편 올라있었다
영어 경시대회가 처음 생겼을 무렵.
학교 대표선수로 그거 준비하면서 꾀부리다가 그때 영어선생님까지 겸하던 내게
된통 걸려서 양씬 얻어맞았던 기억.
아주 이뻐하던 두 녀석.. 생각난다. 용이랑 국이..
그냥 두면 아주 이녀석들이... 싶어서 맘 먹고 혼냈던 일.
모임 있다 해서 우루루 서울까지 달려올라가니
아이구! 아저씨 아줌마들이...
눈가를 콕콕 찍어내며 반겼다.
같이 늙는구나.. ㅎㅎ
만났던 날이 다시 옛날이다. 사오년 전 일.
카페에 들어가니
국에게 보냈던 내 메일이 올라있다.
들여다보다가 담아온다.
새삼스럽다
그날 아뭏든 되게 맞긴 맞았던 모양이구나
용이녀석도 나
보더니 그날 맞은 얘기부터 하더라
그래 그렇게 한이 맺히게 맞았으니
지금쯤 최소한 영어는 잘 하겠구나. 맞니?
(안 그랬다간
또 맞을라)
어떻게 또 그렇게 연결이 되니?
도청에 있었구나
국아, 네 글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
나더라
후련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그런 눈물 말이다
내가 복도 많지
참 많이 사랑한 내 첫 제자들이었더란다
너희들.
학교에 있어보니 그렇더라
졸업해 나가는 애들 보면서 담임인 나만 눈물 흘리고
가는 애들은 까불까불 웃고 가기도 하더구나
보내놓고 그 허전하고 휑한
마음이라니...
그런데 이렇게 오래 뒤에 연락이 닿아서
다시 연결되는 기쁨이 있어
그 허전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구나
나는 요즘 가을 전시회 준비 중이다
그룹전을 몇해 째 해오고 있거든
학교는 아니지만 미술학원에서
꼬맹이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애들을 가르친단다
도서관에서 엄마들에게
그림과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시시콜콜 일러주고
지도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작은 애들은 애들대로 큰 애들은 큰애들대로
이쁘고 귀하기는 너희들과 마찬가지구나
다만 너희가 내게 특별했던
건
교사로서의 내 첫 마음이
너희에게 옴팍 가 있기 때문일 게다
마흔을 향해 가는 중늙이들에게
서슴없이 사랑하는
제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공보실 근무면 여기 올 일은 없니?
오거든 꼭 연락해라
그동안 영어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점검 좀 하자(???)
이곳 군청 문화관광부 과장님 등등
만나서 저녁 식사 중이었는데
준이가
득달같이 전화를 했구나
내가 너희에게 나눈 건 참 작은 사랑이었는데
너희에게서 이처럼 큰 사랑을 무차별로 받고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얘들아(아니 아줌마 아저씨들아)
쬐끔만 더 기뻐하며 울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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