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부동
나는 그림쟁이 될테다
이게 내 어려서부터 꿈이고 희망이고 목표였지.
우선 내가 그림을 그리면
우리 아버지가 꺼벅 좋아하셨고
내 딸 잘한다. 잘한다.
마구 추켜주시는 바람에 방방 떠서
아주 크레파스통을 끼고 살았고
엄마, 이모, 삼촌, 할머니.. 다들 들여다보면서
아이구, 쥐같은 뇬! 차암 잘 그렸구나!! 감탄해주면
더 방방방 떠서
들로 산으로 강으로 화판 들쳐메고
기름 빵빵하게 채운 발동기마냥 칙칙폭폭 싸돌다가
급기야 광주 미술대회 나가는 오래비 꽁지머리를 붙들고
나도 갈래 울고불고 매달린 끝에
담임선생님께도 얘기를 않고 무단 결석, 가출을 하고 따라붙었지
그림은 대충 끼적거리고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 사내라. 손가락 과자 사내라.
이모 삼촌을 들들들 볶아먹고는
사흘 만에 등교했다가
담임선생님께 입학 후 최초로 혼짝 난 학생이 되고(입학 한 지 겨우 두달 째 5월)
그 다음 날인가 신문에 떠억하니 최고상 받았다고 이름이 실려서-ㅎㅎㅎ-
교장선생님께 칭찬 억수로 받고
우리 학교를 빛낸 자랑스런 얼굴에 향후 일년동안 번쩍거렸지 아마.
미술선생님께 뽑혀서 미술반 막내 특차로 들어가고.
담임선생님... ㅎㅎㅎ... 잘했다 하시드구만... ㅎㅎㅎ
해서 일찌감치
미술 쪽으로 굳어버렸던 건데
실은
미술보다 더 좋아했던 건
음악이었어.
일곱 살 때
피아노 치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더듬거리는 거 보고
내가 가르쳤거든. 배우지도 않은 주제에.
엄마한테서 풍금으로 악보 배운 게 다였는데
교회만 가면 풍금에 붙어 살았어. 발판 구르면 부웅부웅 소리 나는 게 신나서.
그래서 악보 보는 건 일찍부터 알았지.
피아노 선생님이 엿듣고는
다음 날부터 내게 공짜 특별 렛슨을 시키셨지.
싹이 괜찮다고.. ㅎㅎ
일취월장.. (이렇게 말하긴 쪼매 여럽지만 사실이니까..)
드드드드 달려나가는 바람에
내 친구를 필두로
속 상해서 그만 둬버린 애들 수두룩!
그런데 내가 특별해서라기 보다 사실은 이래
너무 재밌고, 너무 신나고, 너무 오져서,
피아노 음반이 눈 앞에서 오락가락 꿈속까지 따라다니는 거야
아침에 피아노 치러 갔다가 선생님 안계시면 다음 사람 올 때까지 쳐대고
선생님 안계셨으니까 점심 먹고 또 가.
또 안계시면 내 다음에 온 사람 끝나기 기다렸다가 또 치지.
그렇게 매달리는 데 잘 못치고 배겨?
바이엘 석달도 못되서 상하권 끝내고 체르니 들어가니
선생님도 입 따악 벌리고 이런 애 첨 봤다 놀래고 야단인데
덩달아 더 신났지뭐.
안그래도 내 딸!!하시면서
내 앞에선 무조건 흐물거리시는 우리 아버지
놀래서 그만 피아노를 덜컥 사주셨지.
그때만해도 그런 숭악한 시골에서 피아노가 어딨어?
학교 수업도 풍금 떠메고 다니던 땐데.
학기 초 학급 신상 조사할 때 "피아노 있는 사람" 항목이 들어있을 지경이었잖아.
그런데 그게 실수. 우리 아버지 왕 실수였어
교본 던져버리고 풍짝풍짝 노래 쳐대기 시작하면서
흥미가 싹 가셨거든.
흥미 가시면 뒤도 안돌아보는 성질머리... 발동 걸렸지뭐.
해서 먼저
음악 선생님 기대를 와장창 무너뜨리고
겨우 음악시간 반주 정도로 전락(??)해가지고 기냥 어른이 되었지뭐.
그 때 못 박히게 들었던 말이 그거야
"도시에 사는, 피아노 전공할 공주님들은 세살 때부터 특훈을 받는다"
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게 일곱살이니
세살의 갑절이 폴딱 넘겨버린 늙은 나이였잖아.
당연. 전공할 생각은 꿈도 안꿨지.
시작이 너무 늙어서였기 때문에... 일곱살 씩이나 먹어서...(만으로하면 여섯살)
음악 음이 들어간 분야라면 뭔든지
무조건 세살 되기 전에 시작해야되는 줄 알았다니까
기악이든, 성악이든, 전공하라고 음악선생님들께 솔찬히 들볶였는데
너무 늙어서 시작한(??)... 순전히 그 탓에
불가함으로 사료됨!!으로만 일관했지.
내가 그래.
고지식하기가.. (정확히는 콱 막힌 게!)
지금 와서 보니 세살이라니...
그런 것도 아니데...
속았다 싶은데...
그래서 내 딸은 우리 나이로 네 살 쯤 피아노를 가르쳤지
내가 엄마에게서 배우던 풍금처럼
집에서 예의 그 피아노로 도레미파...
그리고나서 피아노 선생님께 데려가니
너무 어려서 안받겠대. (음메? 네살이나 되어버렸는데??)
그때까진 물론 딸애에게도 전공시킬 생각 없었어
그저 살아가는 기본으루다가...
그런데 일주일만 시켜본다던 선생님이 애에게 꺼뻑 엎푸러지더라.
그리고나서 두서너 살 위의 아이들까지 죄다 그만 두는 사태 발생!!
엄마들이 쪽 팔려해서
저애는 이제 시작해서 저만큼 하는 데 너는 왜 그만 못햇???
자기 자식들 들들들 볶다가 결국 중도 하차.
내 딸이 나도 놀래게 다다다다 달려나가더라니...
이후로 딸은 단 한 번도 피아노 그만 둔다는 소리를 안해.
그래서 그만 전공을 하고있는 게야.
그만둔다는 소리 한 번만 던지면 그날로 딱 그만 시킬 생각이었는데...
내 딸이지만서두 어쩌면 그리 끈질기냐?
어떻게 그렇게 싫증을 안낼 수가 있냐? 그래.
지금도 그만한다는 소릴 안한다니까. 퍽도 질겨. 가시나.
(이제 와서 그만 둔다하면 어쩌게?? ㅎㅎㅎ)
해서 나는 지금 그림쟁이를 고수하는 거고
내 딸은 피아노 전공을 하고 있다는 얘기.
내가 정작 좋아한 건
음악인데... (미술이 싫다는 말 절대 아님!)
고넘의 나이가 세살을 넘겨버려서...
그 때 그 음악선생님이 자꾸 세 살을 강조하는 뻥을 치시지만 않았어도...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