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기름(수선 중)

가장 잘 쓴 글

튀어라 콩깍지 2006. 1. 6. 23:32

애녀석

개학 전 숙제 중이다.

일본의 겨울방학은 겨우 2주일 남짓

1월 초에 3학기 시작하면 2월까지 꼬박 학교에 나가고

3월이 진짜 방학.

 

내년이면 대학 갈 녀석을

꼬드기고 협박하고 달래기까지 하면서

이리저리 여행 데리고 다니다 돌아오니

학교갈 날이 고작 이틀 남았는데

숙제를 안했단다. 숙제를.. 에고!

 

아들놈 소학교 때

내 직장 상사의 늦둥이 아들이 아들보다 한 살 위

방학 동안의 여행과, 한국 오간 일정이 우리 집 녀석이랑 같아서

개학 하루 전날

일기를 써야한다며 우리집으로 왔다

그러니까 지 녀석들은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니

거의 매일을 쫄래쫄래 따라다닌 나더러 즈의들의 일정을 기억해 내라는 주문.

 

재일 한국인 2, 3세 애들 인솔하여 청와대를 가기도 했고

거액의 장학금을 희사한 재일한국인 덕분에 그 대학에 초청 받아 다닌 날들이

방학의 절반을 넘었기 때문에

날짜별로 뭘 했는지 내가 불러주면

적당히 살 붙이는 건 즈이들이 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일기.

즉, 우리집에서 한꺼번에 한달 치 일기를 쓰던 날.

그건 새삼 기억하지 않아도 되므로 알아서들 써라 해놨더니만

우리 아들놈

 

<오늘은

  준이 형아랑 우리 집에서 한달 치 일기 쓰기 숙제를 했다

  엄마가 그날 날씨와 했던 일을 불러주면 우리는 살만 붙여서 받아썼다.

  숙제 안하면 국어선생님께 혼나니까 혼나지 않으려면 어쨌든 해야한다>

 

이랬다.

 

우히히히

박장 대소.

아이구 이놈. 저 혼자만 들통 낸 게 아니라 준이형까지 뽀록을 내고 말았구만...

게다가 엄마의 적그적인 공모를 꼬아바치다니.. 캘캘캘!!

그래도

"엄마가 여태 봤던 니 글 중에서 가장 잘 쓴 일기다.

좌우간에 솔직하게 써라. 솔직하면 서툴러도 감동스러운 게다. 으켁켁!!!"

 

환갑이 넘으셨던 민족학교 국어선생님

그 다음번 날 만났을 때 덮어놓고 자지러지셨다. 깔깔깔깔!!

 

서로 알아본 건 멀찌감치 떨어져있어서 아직 인사도 반듯이 못 나누었을 땐데도

둘 다 눈이 마주치자 마자 배꼽아 날 살려라 웃어댔다

옆 사람들 뭔일인가?? 갸웃거리거나 말거나.

 

방학 마지막 날

밀린 숙제 한꺼번에 해치우는 아들놈 등덜미를 보니

새삼 떠오르는 오래 전 단상.

 

그때 그 국어선생님께 새해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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