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이소프라노로
끼잉낑 어린양에 절어있던
아들놈
목소리 굼실굼실 징그러워지더니만
아이고!
코 밑에 양쪽으로 자리를 잡는 수염....이라기 보다 아직 당당 멀은 솜털.
오랫만에 집에 온 딸에게 이것 저것 챙겨 사주다보니
아들녀석에게 미안해져서
뭔가 필요한 게 없나? 찾으니
'그렇지. 면도기!!'
뭐든 사줄까? 물으면 아니요. 괜찮아요 대답하는 앤데
면도기 사줘? 물으니 씨익 웃는다. 얼라리??
그러면 사달라는 말인데..
남편도 언제부턴지 면도날 갈아끼우는 손 면도기를 쓰던데...
고장 났다는 얘긴데... 그게 언제부터였지?
이참저참
소유권은 아들녀석으로 해두고 용도는 아빠와 아들의 공동 사용용으로 전기 면도기를 산다.
아들놈 스스로도 신기한지 자꾸 꺼내들고 들여다만 본다.
열어보면 다시 상자에 꽁꽁 싸매둔다
오늘도 남편은 손 면도기로 수염 밀고 나갔지 아마.
(2)
딸은
호기심이 유별났다
거침없이 뛰어들고, 대뜸 해보고, 즐기는...
말 없고 침착해서
도무지 아무 것도 않는 내숭일 것만 같은데.
아들은
조심성이 유별났다
통 바라보기만 한다. 지금도
심지어
장난감도 자기 거 아니라면 손을 싹 뗀다. 욕심도 안낸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여행 길에서 다른집 애가 게임으로 따낸 헤드폰 세 개.
척 봐도 조악하기 짝이없는 장난감 헤드폰을 셋 씩이나 뽑았다며 하나 나눠줬다.
그거 받고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 아들놈 행복에 겨워서 주체를 못하고 하는 말,
"나는 뭐든 좋은 건 우리 누나만 갖는 줄 알았어. 그런데 나한테도 이렇게 생기네!!"
"!!!!!!!!!!!...(뭣이라고??????)"
오모메!
하겠다는 애에게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도 따라다니게 마련이므로
그 무렵
묵음 장치를 단 피아노 연습을 위해서 괜찮은 헤드폰을 구했었다.
물론 필요로 하는 사람은 딸.
하필 그 무렵 딸은 독일도 갔다. 피아노 관련.
그러니 여행 가방부터 카메라, 자잘한 준비물들...
그거 바라보면서 한가지도 욕심내지 않았고
한가지도 갖고 싶다는 표정 지은 적이 없는 아들놈.
그러니까 지레 포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 구석도 악착이라곤 없는 순둥이.
뭐든 제 손에 든 것도 내놓고 마는 아이.
그 날
애 녀석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고!. 그랬었구나!!.
이후,
누나와의 변별성에 대해 자주 일렀다
특히 누나보다 니가 잘하는 것들..
그때마다 그저 씨익 웃고만다. 으쓱하지도 않고.
아직도 뭐든 필요없다. 나중에 말하겠다
엄마 거 필요한 거 사라 사양부터하고보는 녀석.
면도기를 사양하지 않는다
씨익!
...그건 갖겠노라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
필요 없다 말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사 표현이다.
면도기 사은품으로 따라 온 포도주 두 병.
톡 따서
한 잔 하자.
아들 딸 불러 앉히고 넷이서 한잔 씩.
검은 후추 성글게 갈아 뿌린 치즈 한 조각!!
헤롱~!
헤헷. 우리 아들 수염이 자란다고???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