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는 게 애시당초
숙제 해치우기지뭐
때 되면 해내야 하는 과정들
죄다 삶의 숙제였어
유치원 이후부터는 일상이 온통 숙제 투성이였다니까
그런대로 무리없이 살아내다가
그만
사는 게 만만해졌지. 나도 모르게.
겁나는 게 없드구만.
뭐든 맘 먹은대로 풀렸거든. 한동안.
얼추 나이 들고
안심을 팍 하는 순간
정수리를 내리치더군.
어리버리 정신이 없었어
바람 뒤에 폭우
뒤에 쓰나미
뒤에 한파
...
그러면서
수긋해지나봐
남의 일 보듯
널널해져서
한파 뒤에 홍수 덮쳐도
그저 필필 웃을 수 있게 되는 거지.
이제 남은 숙제는 뭔고?
반박자 늦춰.
안달하지 말고.
버거울수록 브레이크를 밟는 거야. 느긋이...
...
...
(2)
오늘
몇 달만에 남편 사무실에 나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는데
브레이크를 밟았더니 글쎄
부와앙~!
엔진 헛돌면서 차가 멈추어 주지를 않는 거야.
디립다 남편 차를 들이받기 직전에 지멋대로 구르던 차가 간신히 멎었는데
식은 땀 나서 내려다보니
내가
이 넓덕한 발로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아대고 있잖아.
신발 문수가 크면 별일이 다 생긴다니까.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