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씨(일상)

우체통 앞에서

튀어라 콩깍지 2006. 6. 16. 14:16

우체통 앞에서  



학교 정문 앞 문방구 한 귀퉁이
벌겋게 몸이 달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체통이 있다
배가 불룩한 우체통을 보면
가슴이 콩닥거리던 때가 있어
차라리 내가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너에게 편지를 부치러 가는 시간
마침 우편물 수거 시간이었는지
우편배달부가 우체통 옆구리를 연다
거기 가득
과자봉지며 아이스크림 껍질 비닐종이들  
그 속에 편지는 달랑 두어 통뿐이다
가난했으므로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그리운 그 아무것도 없을 때가 유토피아가 아니겠느냐고
더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될 그 먼 곳으로 편지를 부치던 시절
그리운 그리운 것들이 산처럼 많아
밤새워 편지를 쓰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
동네 일 다 참견하며
주는 술 다 마시고 간경화로 우체부 신씨가 죽었을 때도
그의 죽음보다 그 때문에 한 사흘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던 날들도 있었다
이제 유토피아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젊은 우편배달부는 미리 준비한 봉투에 쓰레기는 담고
두어 통 편지는 우편낭에 담고 오토바이를 타고 거길 떠났지만
너와 나 그리고 저 우편배달부가
그 옛날 죽어버린 우체부 신씨보다 행복할까
가을하늘은 오늘도 턱없이 높아서
나는 문방구에 들러 편지지를 산다
너와 나와의 유토피아를 조금이라도 더 유보시키고 싶구나
오늘밤도
긴 긴 편지를 쓸 것이다

 

 

이렇게 졸졸졸 풀어내는 맛난 말들...

그게 제 것이라면 좀 좋겠습니까만은

<복효근>님 詩

편지 ..............

 

쓰기는 싫고

마냥 받고만 싶은

그런 날입니다.

ㅎㅎㅎ

'콩씨(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깍지 정체 분석을 위한> 세미나..??  (0) 2006.06.24
나에게  (0) 2006.06.23
온 집안을  (0) 2006.06.02
피곤타  (0) 2006.06.02
나오랜다.  (0) 200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