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록에는
땅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름이 늘어난다.
다른 사람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찾다가 문득
그 위에, 아래에, 혹은 옆자리에 새겨져 있는 이름들을 만날 때마다
흠칫! 반갑고 아련하면서 얼마쯤은 설레기도 하고, 조금은 뻘쭘해지는 마음.
가까웠던, 아름다웠던, 따뜻했던, 즐거웠던... 사람들의 이름을 차마 지우지 못하고
휴대폰이나 수첩에 그대로 줄을 세워둔 것은
버릴 수 없는 유년의 사진을 들춰보는 마음과도 같은 거라는 생각이야.
시인 위선환선생님을 모시고 이틀동안 시인학교를 진행했어.
집을 고치다 말고 불려온 이대흠 시인도 함께 어울린 자리.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들 한 마장 쯤은 들뜬 기분이었지
아침 10시부터 밤중까지 이어진 강행군도 오히려 즐거워하며 일정을 끝내고
마무리는 동백정의 서늘한 바람과 멋진 소나무 그늘에서 할 참이었어.
부탁하지 않았어도 너 나 없이 손을 보탠 찻 자리가 풍성했다구.
돗자리 꾸리고 다과 챙기고 찻잔에 찻상까지 일습을 챙겨온 사람.
한과를 곱게 담아내는 사람, 말린 매화꽃을 조심스레 들고 온 사람
손가락만한 꽃병에는 동백 열매 한송이와, 망초꽃, 맨드라미, 여뀌가 하늘거리고... 와우! 환상!!
짐짓 호사스러운 나들이가 될 뻔 했다니까.
흐뭇~!!
그런데
가끔 가끔 식사도 함께 하고, 무슨 무슨 행사에서 얼굴도 마주하고,
북 장단 맞추면서 염불과 닮은 타령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수련관 자원봉사 해준답시고 신도들 데려올테니 말만 하라며 호기를 부리던
스님의 부고가 날아와.
네?? 뭐라고요???
덜컥! 놀라서 머리 속이 하얗더라.
아이구나! 어쩔끄나??
말문, 마음문, 모두 닫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거야.
그 분.
기형도 시인의 친구였다던...
질문 하나 하면 서로 다른 종파의 계보까지도 도서관 헤집으며 답을 주려던 스님.
나는 불자가 전혀 아니지만
창 넓은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내려다보던 수문 바다가
정말이지 속 깊은 풍경이었던 거...
누구라도 허리 접고 깔깔거리도록 재치 넘치다가도
진중하면 범접 못할 위엄과 깊이가 귀기스럽기까지 하던 스님이
글쎄 어깨 눌린 짐 벗어 내리지 못하고
잠적을 했노라더니만
벌초꾼에 의해 발견되었더란다.
(맙소사! 벌초꾼!!)
집 뒤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었던 거라고
전화기 너머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말했어.
얼마나 막막했을꼬?
얼마나 쓸쓸했을꼬?
아직 살아있었을...그 마지막 한 때가 몹시 안타까워.
내 책임도 아니면서
내 잘못도 아니면서
미안터라.
산 자들의 빚...
가슴에 돌덩이 하나 덧얹혀
정각암은
절 터가 참 드센 곳이라고,
어지간한 사람은 터의 기를 이겨내지 못할 거라고,
다실에 앉아 나직하게 말하더니만...
스님의 그릇... 평소의 도량...
늘 감탄스럽던 깊이와 넓이...
하느님 맙소사!
부르는 대상은 서로 달라도
누구나 깊은 속은 치열하다는 점에서 닮은 꼴들!
... 통감해.
어질머리를 훌쩍 넘어서
초 메머드급 충격!!!.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맙소사!!!
그 뿐...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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