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륵
문이 열린다
설핏 잠 들었다가 비몽사몽 정신이 든다
절반 잠 정신, 절반 깬 정신
그러다
깜짝. 기겁하고 눈을 뜬다.
베란다 방충망이 한 뼘 쯤 열려있다
겨우 잠들었다 싶은 새벽잠이 일시에 걷히고 오싹 소름을 친다
거실에서 세상 모르고 뒹굴고 자는 옆지기와 아들.
방충망은 일년 중 거의 닫힌 채로이므로 이 시간에 누가???
더구나 엊저녁엔 빗줄기 장대하여 거실 유리문도 닫힌 채로인데
나는 살랑거리는 바람이 좋아서
빗방울만 방 안 다다미 위로 들치지 않는다면 비오는 날도 거의 베란다로 향한 문을 열어둔다
그렇지만 늘상 꽁꽁 여며 닫기도 하는데...
와락, 겁이 난다.
잠시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더 이상 움직임이 없다. 고 생각한 순간
베란다 난간에 실루엣으로 뜨는 그림자. 시커먼...
저런저런 고연넘.
깜이다.
며칠 전부터 유리문은 이마로 받아치듯이 밀어내고
방충망은 발톱 박아 넣어서 잡아다니는 연습을 하더니만.. 쯧!
영락없이 문을 열고 나가서 난간에 올라앉아 새벽 미명을 즐기고 있다.
우리집 베란다만 어슬렁거리면야 얼마든지 냅두지.
꼭 옆집으로 넘어들어가는 바람에 난감할 때가 있지뭐.
데려들어오려고 거실 유리문을 밀치니
기다렸다는 듯이 힐금힐금 돌아보며
여우작작, 늠름하게 열집 베란다 난간을 타고 넘어가는 중이다.
누군가 자다가 문득 눈이라도 뜨면 기절해 넘어갈 일이지. 저 시커먼 그림자.
쯧쯧쯧쯧.. 혀를 타면서 소리를 낸다.
깜이 삐쭉 돌아본다.
내가 손을 까불리거나 말거나 깜이. 옆집 베란다 난간에 오똑하다.
-"깜이야 깜이야 이리와. 얼른 넘어 와"
암만 깐죽여도 깜이 끄떡도 않는다
-'조것이 시방!'
괘씸해도 길이 없다
내가 깜이처럼 베란다 난간을 타고 넘어들어가기 전에는..
그랬다간, 깜이에겐 해당 안될 지 모르는 가택침입죄가 내겐 꼼짝 없으렷다.
그러나 우선, 폭 좁은 난간을 타고 넘을 재간이 없다.
어떻게든 구슬려서 지 발로 도로 넘어오게 하는 수 밖에.
깜이가 좋아하는 길다란 끈을 찾아다가 깜이를 향해 흔들어댄다.
힐끔 쳐다보고 만다
여기저기 한참 뒤져서 목줄을 찾아낸다.
목이 묶이는 걸 싫어해서 사용하지 않지만 거기 붙은 방울 소리를 엄청 좋아하므로..
날 밝아오는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뿌연 빛을 받으며
딸랑이 방울을 당골레처럼 흔들어대며 맨손 체조(??)를 한다.
깜이 혹해서 넘어온다.
이 짓을 서너 번 되풀이 했다. 오늘 새벽.
유리문 꽁꽁 닫아 걸고 후덥지근, 땀 흘리면서 해돋이를 볼 수밖에 없더니만
하늘 시컴해지다가 엄청 비 쏟아진다.
홍수 주의보 내렸다.
꼭두새벽부터 무당 어매처럼 방울 흔들며 설친 날궂이.
깜이. 지근은 새촘하게 방충망 앞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요조숙녀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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