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딸이라
여자 형제가 없다. 나는.
어려서 함께 자란 사촌동생들을 친동생인양 거두고 귀여워했다...고 생각한다.
둘째와 셋째는 제자이기도 하다.
서로 다 자란 다음 이러저러한 일들 거치다보니
사촌은 사촌이구나...하는
썩 유쾌하지 못한 느낌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촌여동생들 지금도 내동생이련 하고 산다.
그 중 셋째.
붙임성 좋고 부지런하고 천성 곧은 아이.
워낙 싹싹해서인지
언니야, 점심 먹으러 나왔는데 갈 데가 마땅찮아. 라면 끓여줘
전화 주문해놓고 한시간 반을 고속도로 달려서 찾아오던 아이.
남편이랑 애갱탱이들 다 끌고...
그러니까 아이가 아니라 아줌마.
그 애 남편이
내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였는데
순진해터지기가 희귀동물처럼 신기할 수준.
무뚝뚝하기는 또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
무뚝뚝이 아니라 도무지 사람 상대를 어찌할지 몰라서 허둥거리는 거였지만.
하루 종일 말 붙이긴 커녕 고개 돌려 쳐다보는 일 한 번 없는 왕 무뚝뚝.
-"차 마실래요?"
아예 차 타들고 옆구리 찌르는 줄 알면서
-"됐습니다"
하던...
-"되긴 뭐가 돼? 벌써 타왔는데.. 마셔욧!"
디밀면
다른 동료들 벌써 낄낄거리고
얼굴 벌개져서 거의 몸둘 바를 몰라하던 총각
그게 내 눈에 아주 이뻐보였다.
어느 날 또 옆구리 콕콕 찌르면서
-"아주 괜찮은 동생있는데 소개시켜줘??"
했더니 얼굴만 붉어져서 쩔쩔 매던 모습.
일이 되느라고 내 왼쪽 옆자리엔 그 총각이랑 같은 집 사는 총각의 사촌 누나.
시골에선 종종 그런다,
사촌들이 같은 교무실에 앉아있는 일 흔하다.
나도 큰집 언니랑 같이 근무했고..
여하튼 이러쿵저러쿵 총각의 사촌누나랑 말을 맞춰서
내 여동생을 불러냈는데 이 총각 한시간 반동안 안나온다.
이유인즉슨, 매형이랑 바둑을 두신단다. 에휴!
아직 어린 내 동생.
언니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한 내 말을 받들어 총! 하던 애라
조단조단 그냥 나랑 노닥거리면서 싫은 내색없이 기다린다.
안그래도 이쁜 애가..
(정말 탈렌트들 저리가라..할만큼 야실야실 이쁘다)
드디어 나온 총각.
한 눈에 삐용! 정신이 나가서
(그럴 줄 알았어)
아닌 척 시치미 떼면서도
다음 날부터 내 동생을 보고싶어 안달하는 모습이 나를 얼마나 웃겼는지.
나도 모른 척 시치미 떼주면서 킬킬킬... 웃고다니다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총각의 처형이 되었다
집에 다니러 가면
자기네 안방 내어주고 제낭은 거실에서 뒹굴.
내가 어쩌다 거실을 한발짝만 딛어도 벌떡 일어나 정좌를 해서
미안해진 내가 밤 내 안방을 감옥 삼아 갇혀있게 만드는
그 깍듯함으로
꺼떡하면 자기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라한다.
한 번도 처형이라 부른 적 없지만 같은 모임 있을 땐 번개같이 내 옆에 와 서있곤한다
내가 쳐다볼 때까지 마냥 서 있다.
그 집에서는 잠 안자. 안가.
도리질해도 왜 그런지도 모른다.
.............
언니야 라면 끓여줘...
식구들 달고 불쑥 들어서면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내동생 목소리가 갑자기 듣고싶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멀대같이 멀쑥한 제낭이 보고싶다.